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석(李旻碩)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65413
  • 전몰일자 : 19500722

공훈사항

이민석 일병은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50년 3월경 제3여단 제6연대에 입대했다. 제6연대는 1948년 11·12월 발생한 연대 내 좌익 세력의 반란사건으로 1949년 4월 15일 해체되고, 제22연대로 개칭되었다.
당시 북한은 남한 사회의 혼란을 야기하고 장차 제2전선을 형성할 목적으로 소위 유격대를 남파하고 있었다. 제22연대는 토벌부대로 투입되었고, 이민석 일병은 이 소탕작전에 앞장섬으로써 북한군의 후방교란 기도를 분쇄하는 데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22연대는 육군본부 명령에 따라 6월 25일 오후 대구에서 이동하여 27일 이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봉일천 지구의 제1사단을 증원하고, 제3대대는 김포로 출동하여 김포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되었다. 연대(-)는 고양 일대에서 적과 접전을 벌였으나, 서울이 함락됨에 따라 29일 행주나루에서 한강을 도하하여 철수했다. 철수 도중 개화산에 배치된 북한군과 교전을 벌여 이들을 격퇴한 후, 양화-영등포를 경유하여 시흥으로 이동했다.
연대는 6월 30일 시흥지구전투사령부 예하의 혼성제3사단에 편성되어, 7월 1일 금곡리에서 북한군 제3사단과 일전을 벌여 적의 공격을 지연시켰다. 7월 3일 연대는 제1사단에 배속되어 풍덕천 일대의 188고지에 배치되었다. 7월 4일 북한군 제3사단의 선두부대가 제1사단 예하의 제12·13연대에 일격을 당했으나, 곧이어 주력이 제22연대에 집중 공격을 가했다. 연대 장병들은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압도적으로 우세한 적의 공격에 밀려 결국 수원, 천안 일대로 분산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연대는 조치원-청주-보은 일대로 지연전을 펼치면서 적의 남진을 저지했다. 이 지연전에서 이민석 일병은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7월 22일 옥여봉 일대 전투에서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80-ㅁ-05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 전사자 명부에는 소속이 제6연대로 되어 기록되어 있으나, 동 연대는 전쟁 발발 이전에 해체되어 제22연대로 개칭되었으므로 오기로 추정하여 제22연대로 조정함.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