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석(李敏石)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2801592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민석 일병은 충청남도 아산군 배방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1945년 광복에도 불구하고 조국은 분단되어 있었고, 정부수립 이후에도 사회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이에 그는 조국의 안보 확립에 기여 하고자 1949년 1월 18일에 경기도 시흥의 제17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에 배치되었다.
이민석 일병이 소속된 제17연대는 동년 6월 20일에 서울 용산으로 이동하여 수도경비사 예하로 편성되었다가 다시 11월 15일에 옹진반도로 이동하여 제2연대와 임무를 교대했다. 이로써 연대는 옹진지구전투사령부의 작전통제를 받아 옹진반도를 방어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국군은 1950년 3월 1일부로 옹진지구전투사령부를 해체하고, 좌측에서 방어하던 제18연대를 옹진반도에서 철수시켜 수도경비사령부 예하로 복귀시켰다. 이로써 옹진반도에는 제17연대만 남게 되었다. 연대는 64km의 정면에 2개 대대를 배치하고, 1개 대대는 예비로서 옹진 부근에 집결시켰다. 북한군(제6사단 1연대와 제3경비여단 투입)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포격과 동시에 전면적으로 공격하여 아군의 전방대대 방어진지를 양익 포위하려 했다.
연대 장병들은 불과 몇 개월 전에 있었던 은파산 도발과는 차원이 다른 적의 강력한 공격을 받고 당황했다. 연대는 병력의 열세와 지형의 불리한 조건에서도 적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다. 연대는 오전 7시에 옹진 정면이 위급하게 됨으로써 예비대를 투입하여 적의 공격을 격퇴하고자 했다. 그러나 북한군은 태탄에서 옹진 방향으로, 그리고 취야에서 강령에 이르는 국도를 향해 공격하여 돌파함으로써 아군 방어지역을 동서로 양분시켰다.
이민석 일병이 소속된 대대는 오후 2시에 연대로부터 강령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얼마 후 연대와 통신이 끊긴 상황에서 적의 포병공격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대대 장병들은 강령을 거쳐 부포항으로 철수하면서 추격하는 적에게 사격을 가하여 철수병력을 엄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적의 추격을 지연시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4판-1면-14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6-ㅇ-02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