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상(李玟相)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0925
  • 전몰일자 : 19501011

공훈사항

이민상 일병은 경상북도 김천군 봉산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6월경에 입대 후 제7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1950년 7월 5일 제7사단이 해체됨에 따라 제1연대는 수도사단에 편입되었고, 동년 10월 25일 제9사단이 창설될 때 연대의 제2대대가 제9사단으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제2대대 소속이었던 이 일병은 제9사단 직할부대로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이 일병이 소속된 제1연대는 동두천 축선의 38도선 방어 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연대는 동두천 북쪽 소요산 일대의 진지에서 북한군의 보전 협동부대를 저지하였으나 서측으로 우회한 북한군의 위협을 받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연대는 탄약을 재보급받지 못한 상황에서 수십 대의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총공격을 받았다. 이에 소요산 일대의 주저항선이 돌파되기 시작했다. 사단은 10시간에 걸친 혈전에도 불구하고 동두천 방면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제1연대는 6월 28일부터 한강 방어선의 노량진 일대에서 북한군의 남하를 6일간 지연시켰다. 이후 연대는 7월 5일 수도사단에 편입되어 7월 6일부터 평택-진천-청주-보은-안동 방면으로 지연전을 펼쳤다.
제8사단의 뒤를 따라 북한군 제12사단이 계속 공격해오자, 연대는 7월 31일부터 8월 1일까지 안동전투에 투입되어 제8사단의 철수를 엄호하면서 낙동강 남쪽으로 철수했다. 이에 북한군은 1950년 8월 5일에 ‘8월 공세’를 개시했다. 연대는 진지 측 후방으로 침투한 북한군 제12사단과 전투를 이어가며 의성으로 철수했다. 그 결과로 의성-영덕 사이에 큰 전선의 공백이 발생했다.
북한군 제12사단은 국군의 저항을 전혀 받지 않고 청송-죽장-기계 축선으로 남하해 8월 9일에 기계를 점령하고 11일에는 포항을 점령했다. 연대는 1950년 8월 13일에 안강 북쪽 양동리 지역에 투입되어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기계를 탈환하고 적을 격멸했다.
이후 연대는 9월 16일에 반격으로 전환하여 안강-청송-평창-서림 방면으로 진격했고, 1950년 10월에는 38도선을 넘어 간성-통천-회양-신고산-원산 방면으로 북진했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적탄에 맞아 1950년 10월 11일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상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7-ㄹ-02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