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근(李民根)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9380021
  • 전몰일자 : 19530109

공훈사항

이민근 이병은 1931년 11월 28일 경기도 이천군 송현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2년 12월 9일 육군에 입대하였다. 그 시기에 많은 젊은이들이 학업 또는 생업을 중단하고 입대하였다. 이 이병 또한 소총 조작법만을 익힌 채 육본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전황은 1952년 여름부터 공격작전을 펴든 북한군이 가을에 접어들어 전 전선에서 작전의 주도권을 잡고 아군 전초진지에 대해 선제공격을 감행하였고 그 일환으로 서측방 백마고지에 대한 공격도 실시하였다.
1953년 초, 휴전회담이 여전히 중단된 상황에서 전선은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때 쌍방은 1952년 말까지 계속된 치열한 고지쟁탈전 후 전선정비를 하면서 휴전회담의 최대 걸림돌인 포로문제의 조기타결을 목표로 하되 자신들의 입장 관철을 위한 영향력의 행사, 휴전과 관련하여 보다 양호한 방어선의 확보, 그리고 정치, 심리적으로 유리한 입장에서 전쟁의 종결 등 군사. 정치적 목적에서 새로운 작전을 전개하기 위한 군사전략의 모색에 분분하였다.
1953년 1월에 들어 부대는 방어진지 보강과 작전지역에 대한 수색 정찰활동에 집중했다. 이민근 이병과 부대원들은 대규모 공격작전을 보류하고 계속 정찰과 기습을 통하여 북한군과 접촉을 유지하며 방어진지를 더욱 강화하였고, 다만 아군의 경계선 및 주저항선의 요부에서 소규모 공방이 전투 초점이 될 뿐이었다.
이 이병이 소속된 수색대는 수시로 적진에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하여 사단에 보고했다. 그는 1월 9일에 소대원들과 함께 적진으로 침투하여 적정수집을 하던 중 적 부대에 발견되어 전투가 벌어졌다. 이민근 이병은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웠으나, 전투 중 적의 총탄에 가슴을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근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9판-2면-12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88-ㄹ-03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