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규(李敏奎)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2889
  • 전몰일자 : 19511230

공훈사항

이민규 일병은 경기도 평택군 포승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두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총공세로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던 1950년 12월 30일 육군에 입대하여 육군직할 제5교육대에 배치되었다.
한편, 6·25전쟁 발발 이래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함에 따라 병력 보충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1950년 7월 중순 각 편성관구사령부 예하에서 무기와 장비 보충이 없는 상태에서 신편(신병 모집) 중이던 연대들을(전투에 직접 투입할 수 없었기에) 신병교육대로 개칭했다. 이에 따라 전남편성관구사령부 예하 제15연대가 7월 16일 제5교육대로 개칭되어 전주에서 부산으로 이동하여 경남편성관구사령부의 지휘 통제를 받게 되었다. 8월 14일에는 부산에서 육군본부 직할로 제2훈련소가 제1, 제5교육대 병력과 제9교육대 일부 병력을 기간으로 창설되었다. 훈련병들은 1개 중대에 M-1 소총 20정 외, 일제 99식 소총 20정도로 교대로 조작훈련을 받고 배치되었기 때문에 전선에서 제대로 실탄을 장전도 못할 정도였다.
당시 부산은 각종 지원부대, 정부기관 등이 밀집되어 있었고, 유엔군 병력과 물자들이 하역, 집결되고 있어 게릴라들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었다. 전황이 워낙 긴급했고 병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제2훈련소는 조교를 비롯한 기간요원으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게릴라들의 공격에 대응해 왔다. 이민규 일병은 신병교육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서도 기동타격대로서 이들 게릴라 소탕작전에 앞장서 왔다.
그 후 제2훈련소는 1951년 11월 1일 충남 논산에서 재창설되어 보병 병과를 제외한 기타 병과를 대상으로 기초군사훈련을 수행했다. 1951년 12월 30일에 논산 일대 훈련소 인근에 적이 출몰했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제2훈련소 기동타격대원들은 이들 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전투에서 이민규 일병은 대원들과 함께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다가 적들의 기습사격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7판-4면-04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87-ㄹ-02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