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구(李民九)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79669
  • 전몰일자 : 19521019

공훈사항

이민구 하사는 1931년 6월 16일 충청남도 논산군 노성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2년 1월 1일 육군에 입대하여 간단한 기초군사 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민구 하사는 두매리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임진강 북안의 사천-백학산-사미천을 잇는 선에서 중공군 제63군 예하 제188사단과 대치 중이었다. 1952년 1월 13일 오전 8시 105mm 야포 18문과 155mm 야포 6문, 그리고 4.2″ 박격포 8문이 일제히 포문을 열어 두매리고지 일대를 집중 사격하였고 곧이어 전폭기 4대가 측방 엄호포격을 실시하며 적진을 향해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탈환작전은 부진하였다. 이 하사와 연대병력은 계속된 돌격로를 개척하면서 적진으로 돌입하여 마침내 중공군을 격파하고 122고지와 148고지를 탈취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고지를 탈환한 후 곧 이은 중공군의 역습을 받아 다시 빼앗기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이민구 하사가 배치된 임진강 일대 전선은 장마로 인하여 7월까지 비교적 소강상태로 유지되었으나, 장마가 끝나자 전초고지에서는 다시 전투가 격화되었다. 이후 10월 1일부터 제1사단은 임진강 동서안, 역곡천 남안을 연한 주저항선을 방어하게 되었다. 이민구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전초가 북한군에게 점령당한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탈환하기 위하여 다음날(10월 7일) 동고지에 대하여 역습을 실시하였으며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하였다. 10월 8일 니키 고지에 대하여 공격을 재개하였다. 포병․ 전차․ 항공의 지원하에 니키 고지를 재차 공격하였으나 역시 북한군의 집중적인 화력을 받아 실패하고 말았다. 다음날 새벽 1시 공격을 개시하여 105고지를 일격에 탈취한 후 텟시 고지를 공격하는 가운데 일시 적의 강력한 저항을 받아 공격이 좌절되었으나 오후 12시경 다시 공격을 재개하였다. 3일간의 혈전에도 불구하고 전초진지인 텟시, 닉키 고지를 빼앗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가 전투를 수행하는 고지에서는 서로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이 반복되면서 북한군과 아군의 시체가 쌓여갔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이민구 하사는 1952년 10월 19일 고양대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의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구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4-ㅍ-07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