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구(李敏九)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927

공훈사항

이민구 순경은 1921년 1월 6일 전북 김제군 진봉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북도경 고창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곡성에서 전사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고창경찰은 전투태세를 갖추는 한편 주요시설 경비, 고창-부안, 고창-장성, 고창-영광을 잇는 주요 보급로 경비, 주요 시설 경비,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7월 12일 공주를 점령한 북한군 제4사단이 계속 남진하여 18일 7월 18일 강경을, 7월 20일에는 곡성을 점령한 후 일부 부대는 김제로, 일부는 전주로 남진함에 따라 전북도경은 7월 20일 남원으로 철수했다. 7월 20일 전주가 적의 수중에 들어가자 남원에 집결한 전북도경과 전북의 일부 지역 경찰은 임실 방면에서 남하하는 북한군에 대비하기 위해 육군부대와 합동 방어태세를 갖추고, 남원시 운봉에 진출한 함양경찰 병력과 합세하여 육십령 고개에 차단진지를 구축했다.
7월 31일 진주가 함락되자 군경부대는 마산으로 진격하는 북한군 제6사단에 대비하기 위해 경남·전남·전북의 경찰병력 4,000명으로 전투편성을 한 다음, 지휘소를 함안군 군북면에 두고 미 제25사단, 한국 해병대와 합동으로 적과 대치했다.
8월 하순이 되자 경찰부대는 적의 최종공세에 대비하여 진동리지구에 경남경찰, 전남경찰을 배치하고, 함안지구에는 전북경찰을 배치하여 미 제25사단의 방어진을 보강했다. 또한 의령 방면에서 진격하는 북한군 제7사단에 대비하여 전북경찰 1개 대대를 함안군 법수면에 배치하고, 미산령과 전투산에는 전북경찰독립대대와 전남경찰 2개 중대를 배치했다.
북한군은 9월 1일 마산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으며, 이 공격으로 미 제25사단의 정면이 돌파되어 함안을 빼앗기고 말았다. 미산령 일대의 미 제24연대와 경찰부대는 적의 공격에 밀려 후퇴하게 되었고, 적은 창원군 칠서면까지 공격함으로써 마산의 위기가 고조되었으나 아군의 반격으로 적을 격퇴하고 함안을 탈환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9월 16일 국군과 유엔군이 총반격을 개시함에 따라 고창경찰도 9월 17일 함안을 출발하여 고창을 향했다. 고창경찰이 곡성을 지날 무렵 9월 27일 잔적의 공격을 받고 쌍방 간 교전이 벌어졌다. 이 순경은 적을 격퇴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구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7-ㄲ-04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