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구(李敏求)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827

공훈사항

이민구 경사는 1923년 6월 9일 전남 함평군 대동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남도경 담양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함안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 경사는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가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고 군경부대가 남쪽으로 후퇴함에 따라 담양경찰은 정읍-담양, 고창-담양, 담양-순창을 잇는 주요 도로 통제, 주요 시설 경비,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임무를 수행했다. 한강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자 전남경찰국은 각 서(署)에서 일부 병력을 차출하여 전북경찰국에 배속하고, 나머지 병력으로 전남전투경찰부대를 편성하였으며, 담양경찰서 병력도 전투경찰로 재편되었다.
북한군 제6사단은 7월 20일 전주를 점령하고 잠시 부대를 정비한 후 7월 22일 공격을 재개했다. 북한군 제13·제15연대는 국군과 경찰의 저항을 뚫고 7월 23일 장성·광주를, 24일 화순·나주·장흥을 점령한 후 보성 방면으로 진출했고, 제1연대는 24일 남원을 점령 후 구례-순천으로 남진했다. 이에 전남편성관구사령관은 순천·광산 인근의 경찰과 각지에서 후퇴한 경찰을 3개 부대로 재편하여, 그 중 이 경사가 소속된 부대를 순천 서북방 학구로 출동시켜 적을 저지하도록 했다.
7월 25일 야간 북한군 제1연대가 화력을 집중하며 공격을 개시했다. 이 경사가 소속된 경찰부대는 혼신의 노력을 다하여 적을 저지하다가 하동-진주를 거쳐 8월 7일 고성에 도달했다. 동으로는 마산, 남으로는 통영의 관문이 되는 이곳에서 경찰부대는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북한군의 공격에 대비했다. 8월 10일 북한군 제7사단의 부대가 고성군 일대에서 공격을 하자 담양경찰을 비롯한 경찰부대는 전 화력을 집중하여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병력과 화력의 열세로 8월 11일 고성에서 후퇴, 마산으로 기동하여 다른 경찰부대와 함께 낙동강 방어작전에 참여했다. 8월 27일 북한군 제7사단 부대가 공격을 개시하자 피·아 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 경사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적을 격퇴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다가 적탄에 의해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구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9-ㄲ-03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