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민건(李玟鍵)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2805286
  • 전몰일자 : 19510721

공훈사항

이민건 하사는 1926년 3월 29일에 경상남도 울산군 울산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북한 공산세력들의 침투 및 교란으로 사회가 혼란스럽던 1949년 7월 중순에 서울 용산의 제17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에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동년 11월 15일에 옹진반도로 이동하여 38도선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제17연대는 옹진반도에서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북한군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저항했으나 역부족으로 6월 26일 아침 부포항으로 이동하여 해군에서 지원한 LST에 승선하여 인천으로 철수했다. 이후 7월 한 달은 수도사단에 배속되어 보은-상주 일대에서 지연전을 수행했고, 8월 한 달은 낙동강방어선상의 기계-안강 지역에 투입되어 북한군의 최후 공세를 저지했다. 이후 인천상륙작전부대로 선발되었으며, 미 제7사단에 배속되어 9월 18일에 인천으로 후속상륙한 후 영등포를 거쳐 신사리에서 서빙고로 도하하여 서울의 동쪽을 탈환했다.
이민건 하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11월 7일 서울에서 재창설된 제2사단에 예속되어 포천 일대에서 후방지역작전을 수행하다 12월 중순에 가평 일대의 양문리-탑두울 선에서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이어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실시된 ‘중공군 신정공세’로 철수하여 제천-안동 일대로 이동 후 공비소탕작전을 수행했다. 1951년 4월 28일에 전방작전지역인 청평 일대로 이동하여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저지시키고 바로 실시된 반격작전에 참가했다.
제2사단은 5월 20일부터 23일까지는 미 제24사단의 가평으로 진출을 엄호하고, 24일 아침 7시에 ‘가평-화천 진격전’에 참가하여 38도선을 향해 일제히 공격했다. 6월 15일경에는 적근산-육단리까지 진출하여 방어로 전환했다. 이후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 전선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연대는 방어진지 보강과 수색정찰 활동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이민건 하사가 소속된 소대는 7월 21일에 방어지역 전방으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매복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분대장으로서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민건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19-ㅎ-04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