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미태(李未泰)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2969
  • 전몰일자 : 19500915

공훈사항

이미태 일병은 경상남도 울산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이 일병의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3월경 입대 후 제7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1950년 7월 5일 제7사단이 해체됨에 따라 제1연대는 수도사단에 편입되었고, 동년 10월 25일 제9사단이 창설될 때 연대의 제2대대가 제9사단으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제2대대 소속이었던 이 일병은 제9사단 직할부대로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이 일병이 소속된 제1연대는 동두천 축선의 38도선 방어 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북한군은 제1연대의 정면으로 진격해왔고 제1연대는 이를 저지하고자 동두천 북쪽 소요산 일대의 주저항선에서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하지만 탄약을 재보급받지 못한 상황에서 수십 대의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총공격을 받아 주저항선이 돌파되기 시작했다. 연대는 10시간에 걸친 혈전에도 불구하고 동두천 방면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제1연대는 1950년 6월 29일부터 한강 및 시흥 지구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북한군 제7사단의 남하를 6일간 지연시킨 후, 7월 6일부터는 평택-진천-청주-보은-안동으로 지연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후 지연전을 펼치며 17일에는 보은을 거쳐 20일 안동 일대로 이동했다. 8월 공세의 일환으로 북한군 제12사단이 계속 공격해오자, 연대는 8월 1일 안동 북쪽에서 국군 제8사단을 엄호하면서 낙동강 남쪽으로 철수했다.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낙동강 남쪽 반변천 일대에서 북한군과 교전하며 8월 3일에 길안과 청송으로 철수했다. 이어 진지 후방으로 침투한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이어가며 의성으로 철수했다.
북한군 제12사단은 의성-영덕 간 50㎞에 달하는 공백이 발생하자, 국군의 저항을 전혀 받지 않고 8월 9-12일 사이에 청송-죽장-기계 축선으로 남하해 기계와 포항을 점령했다. 이에 연대는 8월 16일에 안강 북쪽 양동리 지역에 투입되어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기계를 탈환했다.
북한군 1950년 9월 공세 당시 북한군 제12사단과 제5사단은 경주를 점령하기 위해 집중 공격을 가했다. 연대는 경주 북방의 호명리 일대에서 9월 9일까지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한 끝에 적을 격퇴함으로써, 낙동강 전선의 최후 위기를 극복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적탄에 맞아 1950년 9월 15일에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미태 일병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7-ㄷ-01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