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미용(李美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7274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미용 일병은 전라북도 김제군 월촌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 1월경 제5여단 제3연대에 입대했다.
이 일병이 입대할 당시 공산주의자들의 소요사태와 남파된 북한 유격대에 의한 습격·파괴활동으로 사회 혼란이 계속되고 있었다. 1948년 10월 ‘여·순 10·19사건’이 발생하자 제3연대는 진압부대로 투입되었고, 연대는 1949년 6월 20일 제2사단에서 제5사단으로 예속이 변경되어 지리산 일대에서 잔당토벌작전을 계속했다. 이후에도 이 일병은 지리산지구전투사령부에 소속되어 1950년 1월 25일까지 잔당토벌에 앞장섰다. 1월 25일부로 제3연대는 제7사단으로 예속 전환되었다가 동년 6월 15일부로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이 변경되었다.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3연대는 동일 11시부로 동두천, 포천 축선을 방어하고 있던 제7사단에 배속되었다. 제3연대는 휴가나 외출·외박 중인 병력을 긴급 소집하여 혼합 중대를 편성하여 오후 2시에 의정부에 도착했고, 포천 후방의 송우리 전선에 곧바로 투입되었다. 제3연대가 투입된 포천 축선은 북한군의 주공이 지향된 지역으로 제3사단과 제105전차여단 예하 제107·109전차연대가 기습공격을 가했고, 방어부대인 제7사단은 절대적인 전력의 열세 속에서 남침 첫날 포천 일대의 주저항선이 무너지면서 철수하고 있었다.
제3연대는 태봉산(182고지)과 해룡산 동남쪽의 178고지에 진지를 편성하고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자 했다. 6월 25일 저녁 무렵 송우리에 접근한 북한군은 T-34 전차를 앞세우고 압도적으로 우세한 전력으로 공격을 감행했다. 병력, 장비, 훈련 등 모든 면에서 절대적으로 열세한 가운데 이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무기가 없는 아군은 분전했으나, 적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하고 그날 야간에 의정부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내 손으로 조국을 지켜내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웠으나, 끝내 적을 막아내지 못하고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미용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0판-5면-03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7-ㄷ-06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