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미용(李未龍)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7904132
  • 전몰일자 : 19510423

공훈사항

이미용 이병은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이병은 1950년 10월경 입대 후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병이 속한 유엔군사령부는 중공군의 제1차 공세가 끝나고 소강상태가 지속되자 중공군이 또다시 조직적인 공격을 가해오기 이전에 전쟁을 종결시키는 계획을 수립해 1950년 11월 24일 총공세를 단행했다. 이후 1951년 2월 혹한의 상황에서 방어태세를 강화했으며 재정비를 완료한 후 1950년 2월 4일을 기하여 사단지휘소를 능우리로 이동시켰다. 이후 형성 서북방 신촌을 통과하여 적 소부대의 저항을 제거하면서 풍수원 방면을 향해 진격했으며 동봉의 적 2개 중대를 격파하고 전차부대의 엄호하에 창봉리의 적 2개 중대에 대하여 공격을 개시하여 완전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492고지의 적을 격파한 후 야산리의 적에 대하여 공격을 개시하는 동시에 579고지와 매남고지를 완전 확보했다. 하지만 여태까지 소수 병력으로만 저항을 시도한 적은 2월 12일을 기하여 대병력을 투입하여 아군 전선에 대하여 대 반격공세를 취했다. 적은 일부 병력으로 하초원리 부근의 도로를 차단했는데 특히 아군 전차와 화포병의 돌파를 예상하여 도로를 폭파시킨 다음 제8사단의 정면으로 3개 사단이 포병의 지원사격을 받으며 역습을 감행해왔다.
제8사단은 오음산 대삼 고개의 진지로부터 횡성으로 철수를 개시하려고 했으나 이미 적의 전초 중대가 횡성을 향하여 집결 중이었기 때문에 제8사단은 고립된 채 포위 상태에 들어갔다. 이에 아군은 포병 1개 대대 및 전차 5대로 철수를 위한 개척을 기도했으나 분산해 매복해 있는 적을 발견하지 못해 철수가 어려워졌다.
결국 제8사단은 아군의 증원을 기다리며 방어했지만 아군 전선에 대대적인 포격이 가해져 모든 연대가 포위상태에 들어가 제8사단 일부만 주포리로 지휘소를 옮기며 철수했다. 철수를 완료한 제8사단은 부대 정비 후 1951년 4월 공비토벌작전에 참여했다. 아군은 금산지구 일대의 적을 포착하고 섬멸하기 위해 공격을 시작해 581고지와 700고지를 점령했으며 수색을 통해 잔적을 색출해냄으로써 큰 전과를 세우고 금산지구 공비 토벌전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 이병은 1951년 4월 23일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미용 이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2-ㅌ-00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