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미수(李未守)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9235723
  • 전몰일자 : 19530620

공훈사항

이미수 상병은 경상남도 합천군 대양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 협상이 지속되면서 고지 쟁탈전이 진행되던 1952년 9월 초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육군직할 제59경보병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미수 상병이 부대에 배치될 당시 전황은 1952년 여름부터 공격작전을 진행한 북한군이 가을에 접어들어 전 전선에서 작전의 주도권을 잡고 아군 전초진지에 대하여 선제공격을 감행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한편, 1951년 7월 10일 최초로 휴전회담이 열리면서 회담이 진행되자, 韓·美는 미군 재보충이 어려운 상황과 휴전 후의 한국 국방을 고려하여 1952년 초부터 육군을 10개 사단에서 20개 사단으로 증편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1952년 11월 8일 강원도 양양에서 6개의 경보병연대(제53~59연대)가 창설되었다. 이 중에서 제57·58·59연대는 제15사단에 잠정 배속되었다가 1953년 1월 1일부로 제1교육여단으로 재편성되었다.
2월 9일 제20사단이 창설되면서 제1교육여단은 해체되고, 이들 연대는 제60연대(전 57연대), 제61연대(전 58연대), 62연대(전 59연대)로 개칭되어 사단 건제부대로 편성되었다. 사단은 창설 후 美 제10군단에 배속되어 인제로 이동 후, 야외교육훈련(FTC교육)을 포함한 교육훈련을 2월 10일부터 5월 14일까지 실시했다. 연대는 교육훈련을 하면서 3월 중순 제7사단에 배속되어 현지 실습을 하기도 하고, 4월 13~14일 제7사단 930고지에서 벌어진 소규모 전투에 참가하여 전투경험을 쌓기도 했다.
사단은 5월 15일 제7사단이 담당했던 양구군 방산면 백석산 북방의 1,090고지 일대의 전선을 인수했다. 사단은 제62연대를 좌, 제60연대를 우, 제61연대를 예비로 하여 방어편성을 했다. 이미수 상병이 소속된 제62연대는 진지교대 이후 큰 전투가 없는 가운데 현 진지를 보강하면서 위력수색, 매복작전 등을 지속했다.
적은 휴전회담을 지원하면서, 새로 투입된 중공군의 전투경험 축적과 아울러 방어선을 개선할 목적으로 6월 공세를 감행했다. 이 공세의 일환으로 사단 정면의 중공군 제33사단이 6월 10일부터 사단 전초진지인 M1고지와 1,090고지에 대해서 공격을 가해 왔고, 사단 좌전방 연대인 제62연대는 6월 20일까지 1,090고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한 끝에 이 고지를 지켜냈다. 이 전투에서 이미수 상병은 6월 20일 1,090고지에서 분대원과 함께 중공군과 교전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미수 상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7판-7면-21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8-ㅇ-083)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