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미덕(이미덕)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77623
  • 전몰일자 : 19501209

공훈사항

이미덕 일병은 경상북도 경산군 용성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27일, 제주도에 설치된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17연대로 배치되었다.
제17연대는 인천상륙작전부대로 선발되어 9월 13일에 부산항에서 함정에 승선하여 9월 18일에 인천으로 후속 상륙했다. 이후 제17연대는 미 제7사단에 배속되어 영등포를 거쳐 한강 이남으로 진격하여 신사리 일대에서 한강을 도하, 남산과 매봉을 탈취했다.
이미덕 일병이 부대로 배치되었을 때, 제17연대는 서울에 잔류하여 주요시설경계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한편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압록강을 향해 북진 작전을 실시했다. 서울에서 제2사단이 재창설될 때에 사단으로 전속되었고, 사단 직할부대인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당시 제2사단은 11월 7일에 국본 일반명령 제103호에 의거 서울에서 재창설되었다. 이때 제17연대를 예속시키고, 이어 11월 11일과 13일에 제31, 제32연대를 신편하여 예속시켰다. 재창설 직후 사단은 지휘소를 서울에서 가평으로 이동하고, 제17연대는 철원, 제32연대는 의정부, 배속된 제5사단 제35연대는 구화리 일대에 배치시키고, 제31연대는 제5사단에 배속되어 홍천 일대에서 후방교란 활동을 하고 있던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이미덕 일병이 소속된 사단 수색대는 후방지역작전에 집중하고 있었다. 당시 포천, 평강, 구화리 일대에서 병참선 차단 등 후방지역을 교란하고 있던 북한군 패잔병들은 중공군 공세에 호응하기 위해 철수하고 있는 국군과 유엔군을 더욱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38도선으로 철수하게 되자, 사단은 수색작전을 멈추고 12월 8일에 포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사단 수색대는 추후 예상되는 중공군 공격에 대비하여 방어진지 전방에서 수색작전을 강화하고 있었다. 반면 중공군은 정찰대를 보내어 아군의 방어실태를 점검했다. 이미덕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12월 9일에 방어진지 후방으로 침투하는 중공군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미덕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3면–20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1-ㅈ-04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