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미덕(李未德)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2017
  • 전몰일자 : 19510114

공훈사항

이미덕 일병은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 및 유엔군이 중공군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고 청천강으로 철수하여 재반격을 준비하던 1950년 11월 중순, 제주도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2사단 수색대로 보직되었다.
이미덕 일병이 부대로 배치되기 전, 제2사단은 11월 7일에 국본 일반명령 제103호에 의거 서울에서 재창설되면서 제17연대와 신편 된 제31, 제32연대를 예속시켰다. 재창설 직후 사단은 지휘소를 서울에서 가평으로 이동하여 예하 부대는 철원, 의정부, 구화리, 홍천 일대에서 후방교란 활동을 하고 있던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이후 사단은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을 멈추고 포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추후 예상되는 중공군 공격에 대비했다.
이미덕 일병이 부대로 배치된 12월 중순에 제2사단은 포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 일대에서 임박한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방어진지구축과 철조망 설치 등 방어준비 강화에 여념이 없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야간에 드디어 총공세(일명 중공군의 신정공세를 시작하여 서울을 압박했다. 그는 사단 장병들과 방어진지를 사수하며 적의 공세를 저지하고자 했으나 이미 적은 아군의 후방을 차단하며 포위 섬멸하고자 했다.
제2사단 장병들은 중공군의 공격을 하룻밤을 버티지 못하고 다음 날인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진지에서 이탈하여 청평으로 철수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미 적들이 후방을 차단한 상태여서 적을 상대로 전투하며 차단선을 돌파해야 했다. 이미덕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장병들과 함께 1월 3일에 청평에 도착하여 여주로 이동했다. 그리고 1월 7일에는 충주에 집결한 후 미 제10군단 예비사단으로 풍기에서 재정비하며 충주-단양 간 병참선을 경계했다. 그가 소속된 소대는 1월 14일에 병참선 경계를 하던 중 적 1개 소대 규모로부터 습격을 받았으나 치열한 전투 끝에 격퇴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가장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미덕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2판-3면-15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8-ㄲ-06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