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물수(李物守)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31978
  • 전몰일자 : 19510329

공훈사항

이물수 일병은 경상남도 거제군 사등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이 일병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일병은 1950년 9월 20일에 입대 후 카투사로 선발되어 미 제8군으로 전입되었다가 육군의 부대조정에 의거해 제9사단 직할부대로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입대할 당시, 아군이 북으로 진격함에 따라 퇴로를 차단당한 적의 잔류 병력은 아군의 후방을 교란했다. 이에 후방지역작전을 하던 미 제9군단과 예하 미 제2·제25사단은 청천강 선으로 투입되었다. 따라서 국군 제3군단이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게 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힘입어 총반격작전으로 전환하였다. 아군이 1950년 10월 19일 평양을 점령하고 계속 북진하는 전황 속에서, 제9사단은 10월 25일에 서울에서 제28·제29·제30연대를 예하부대로 두고 창설되었다.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1950년 11월 23일부터 12월 17일까지 전북 대둔산 및 충남지구와 경북 서부지역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했다.
12월 19일부로 제9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그 후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원대리-현리-서림을 잇는 선을 방어했다. 연대는 현리-서림을 잇는 방어선에서 12월 말까지 북한군 제2군단 소속의 유격부대와 격전을 벌였다.
이어서 12월 31일에 시작된 중공군 제3차 공세 당시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었다. 사단은 원대리-서림을 잇는 방어진지에서 북한군 제10사단과 격전을 벌였다. 그 후 상급 부대명에 의거하여 영월-삼척 선으로 철수한 뒤 정선군 창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창리 일대에서 중공군 2월 공세를 맞아 대략 10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을 격퇴했다.
제9사단은 1951년 3월 5일에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안동 일대까지 침투했다가 북상하는 북한군 제10사단을 강원 정선군 송계리 일대에서 포위 격멸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맞아 1951년 3월 29일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물수 일병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8-ㅁ-00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