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희(李文熙)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24929
  • 전몰일자 : 19521022

공훈사항

이문희 하사는 경상북도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및 구체적 출생 장소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한 1950년 12월 중순,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제3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문희 하사가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 제2사단은 2월 13일에 안동 일대로 이동하여 후방지역 안정화 작전을 실시했고, 이후 4월 28일에 청평으로 이동하여 미 제9군단에 배속되었다. 이곳에서 제2사단은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맞아 방어로 전환했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 북방-용문산-대관령-강릉을 잇는 선에서 저지하고 5월 20일을 기해 일제히 반격으로 전환했다. 제2사단 장병들은 청평-가평을 연결하는 도로상의 감제고지에 배치된 적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고 6월 중순까지 육단리-적근산(1073고지)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이후 쌍방 간에 휴전협상이 논의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되었다.
제2사단은 상급부대 지침에 의거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방어진 전방의 감제고지인 745고지를 탈취하기로 했다. 이문희 하사가 소속된 제32연대는 8월과 9월에 두 차례에 걸친 공격 끝에 탈취했다. 이후 군단장은 계속 공격하여 금성천 분지를 장악하기로 했다. 이에 사단은 10월 14일부터 21일까지 공격하여 522고지-477고지-하진현까지 점령했고, 그가 소속된 제32연대는 사단의 조공으로서 하진현 일대를 점령했다.
이후 제2사단은 1952년이 되면서 몇 번의 부대이동을 거쳐 6월 30일에는 미 제40사단의 진지를 인수하여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의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공산군이 백마고지 등에 지속적으로 공격을 감행하자, 유엔군은 휴전협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공세적인 행동을 하기로 했다. 이에 사단은 10월 14일에 김화 북쪽의 저격능선을 공격하여 탈취했다. 이후 중공군의 역습으로 다시 빼앗기고, 빼앗는 치열한 전투가 42일 동안 계속되었다. 그는 10월 22일 전투에서 소대선임하사로서 진두지휘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희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2판-4면-09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0-ㅂ-06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