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희(李文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8907
  • 전몰일자 : 19500920

공훈사항

이문희 일병은 경상북도 경산군 남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초,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단기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문희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9월 초, 제6사단은 북한군의 대규모 공세를 받았다. 즉 북한군은 9월 2일 18시를 기해 9월 공세를 개시했다. 그는 장병들과 함께 적의 9월 공세를 맞이하여 화산 주봉 – 725고지를 잇는 고지군에서 사력을 다해 격퇴하고자 했다. 북한군은 최후 결전 형태의 공격으로 아군을 위협하였으며, 한때 영천, 경주, 포항을 피탈 당하여 낙동강방어선이 큰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다. 이에 유엔군도 9월 7일부터 모든 화력, 즉 포병 화력과 각 대대의 박격포는 물론 미 공군 전폭기의 항공폭격까지 지원받아 적의 공격을 격퇴하고자 했다. 당시 제7연대는 모든 전투력을 적에게 쏟아부어 신녕 북방에서 적의 공격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북한군은 9월 12일 이후부터는 공세를 취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에 보조를 맞추어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전 전선에서 일제히 반격을 개시했다. 제6사단도 지금까지 방어하던 정면의 적을 향해 반격을 개시했다. 북한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그들의 후방이 차단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강력히 저항했다. 사단은 9월 18일에 조림산 일대의 북한군을 포위 섬멸하고자 했으나, 북한군도 방어태세를 강화하고 완강히 저항했다. 또한 악천후로 인해 항공화력을 지원받지 못한 상황에서 북한군과 일진일퇴의 공방전만을 전개했다.
이문희 일병이 소속된 제7연대는 9월 20일에 사단의 주공으로서 조림산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적들은 가벼운 저항을 하면서 퇴각했다. 그는 신병이었지만 용감하게 잘 싸웠고, 이날도 선두에서 적을 향해 돌진했다. 이날 공격 중에 그는 불행히도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1판-2면-12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0-ㅅ-06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