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환(李文煥)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1251
  • 전몰일자 : 19501015

공훈사항

이문환 일병은 경상남도 울산군 웅촌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낙동강 선까지 철수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이 일병은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1950년 8월 하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북한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일진일퇴의 격전을 벌이고 있었고, 제3사단은 흥해 남쪽 고지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9월 1일 제3사단은 일제히 반격했고, 북한군 제5사단도 9월 2일 포항과 영일 비행장을 목표로 총공격(9월 공세)을 개시했다. 적의 강력한 공격에 제3사단의 주저항선이 돌파됨에 따라 사단은 일시적으로 철수했다가 포항 방어에 중요한 128고지, 105고지, 93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역습을 감행했다. 그러나 북한군의 파상적인 공격에 소티재 고개 일대로 다시 철수하여, 자명동-111고지-96고지-소티재-두호동 선에 급편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9월 4일까지 혈전을 거듭했다.
9월 5일 새벽 적은 공격을 감행했고, 연대는 3시간여에 걸쳐 완강히 저항했으나 결국 방어선이 붕괴되어 형산강 변으로 철수했다. 이곳에서 연대는 9월 14일까지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한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물리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에서 최후 위기를 극복하고 총반격 태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으로 전환했고, 제3사단은 9월 17일 형산강을 도하하여 반격을 개시했다. 9월 23일 사단은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계속 파죽지세로 나아가 장사동-평해-울진-삼척-강릉(30일)을 적의 큰 저항 없이 탈환하면서, 일일 평균 17.3km의 속도로 진격했다. 연대는 10월 2일 38도선을 돌파했고, 5일 치열한 격전 끝에 강력히 저항하는 적을 격멸하고 장전을 점령한 후, 6일 통천을 점령했다. 연대는 적의 가벼운 저항을 물리치고 계속 진격하여 9일 남대천 일대에 도착하여 원산 공격 준비를 했다.
10월 10일 새벽 공격을 개시한 연대는 적의 완강한 저항을 물리치고 원산을 점령한 후 시내의 잔적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이 일병은 용감하게 앞장서서 잔적소탕작전을 하다 15일 적의 기습사격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6판-6면-07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5-ㅁ-06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