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화(李文化)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748888
  • 전몰일자 : 19520219

공훈사항

이문화 일병은 1930년 12월 16일 전라남도 무안군 삼량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1년 9월 15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 일대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고, 제3사단은 양양, 간성 일대에 배치되어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수행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사단은 5월 16일 시작된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됨에 따라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평창 송계리에서 부대정비를 한 사단은 5월 말 양양, 간성 일대에 배치되었다. 사단은 10월 19일까지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여 주요시설 경계, 매복작전, 수색정찰작전 등을 전개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으로 배속이 전환되었고, 수도사단에 현 지역을 인계한 후 양구 동북방 가칠봉으로 이동하여 제5사단의 진지를 인수했다. 제23연대는 서희령 일대에 배치되었다. 한편 사단 전방의 북한군 제2군단은 1,211고지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제2사단과 제13사단을 각각 배치하고 제27사단을 예비로 두었다.
미 제10군단장은 만곡부를 이루고 있는 전선을 밀어 올리도록 명령했고, 사단은 가칠봉 북서방의 1,211고지를 탈취하도록 예하 연대에 명령했다. 1,211고지는 가칠봉 북서쪽 약 1km 지점에 있는 고지로서, 제5사단이 1951년 8월 31일부터 10월 14일까지 치열한 공방전 끝에 3번이나 점령하고도 끝까지 고수하지 못했던 고지였다. 연대는 1,211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제18연대 제1대대를 배속받아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북한군 제13·2사단과 백병전을 전개하며 공방전을 펼쳤지만, 적의 강력한 저항으로 결국 이 고지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이후 연대는 진지를 보강하면서 수색정찰작전, 매복작전, 적진에 대한 전투정찰 등을 지속했다. 이 일병은 1952년 2월 18일 수색작전 중에 적을 발견하고 교전하다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2월 19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화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4판-4면-24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8-ㄷ-02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