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호(이문호)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378578
  • 전몰일자 : 19530714

공훈사항

이문호 하사는 1932년 7월 24일 충청남도 천안군 입장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2년 12월 5일 제1연대에 현지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예하부대로 배치되었다.
제1연대는 1946년 1월 15일 경기 양주에서 창설되어, 1949년 5월 12일 수도사단에 예속되었다. 수도사단은 동년 6월 10일부로 제7사단으로 개칭되어 동두천 축선의 38도선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한 이후 미약한 병력과 장비로 전투력 손실이 심해 7월 5일 해체되어 제1연대는 제8・18연대와 함께 수도사단(수도경비사령부로 개칭) 예하부대로 재편되었다.
1953년 초 당시 상황은 휴전회담이 여전히 중단된 상황에서 전선은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때 쌍방은 계속된 치열한 고지쟁탈전 후 전선 정비를 하면서 3월까지 방어력 강화와 공세 역량의 축적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문호 하사는 전선에 배치되어 1953년 5월 14~16일 금성 서남쪽 7㎞ 지점 직목동 일대에 있는 샛별고지(470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또한, 5월 23~24 금성 서남쪽 4㎞ 지점에 있는 회고개 전투에서 중공군을 물리쳐 금성 돌출부 일대의 주저항선을 고수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 결과 사단은 6월~7월 하조리에서 회고개까지 주저항선에 제1연대와 제26연대를 배치하고 제1기갑연대를 예비로 확보할 수 있었다.
1953년 7월, 휴전이 임박해지고 있을 때 금성지역 북방에 위치한 중공군이 6·25전쟁에서 그들이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을 세계에 과시하려는 정치 목적과 중부전선에 돌출되어있는 한국군 전선으로부터의 위협을 제거할 목적으로 중공군 4개 군 산하 12개 사단의 병력을 동원하여 이 하사와 연대병력이 방어하고 있던 금성지역의 돌출부에 대한 공세를 감행하였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문호 하사는 1953년 7월 14일 금성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호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9판-2면-09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27-ㅍ-03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