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호(이문호)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78041
  • 전몰일자 : 19510129

공훈사항

이문호 일병은 1925년 1월 12일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중공군의 참전으로 조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구하고자 분연히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12월 20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청천강 일대에서 38도선으로 철수하여 전열을 가다듬고 있던 상황이었다. 미 제8군은 김포반도-임진강-화천-양양을 잇는 선을 주저항선으로 설정하고, 중서부전선은 미군에, 동부전선은 한국군에 방어임무를 부여했다. 이에 따라 제7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춘천 동북방의 38도선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고 분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됨에 따라 상급부대의 명에 의거 자은리를 거쳐 횡성 북방으로 철수했다. 북한군 제5군단이 원주 지역에 깊숙한 돌파구를 형성함에 따라 연대는 또다시 철수하여 1951년 1월 8일 영월 동북방의 봉래산 일대에 배치되었다. 연대는 이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면서 침투한 북한군 제9, 제31사단 침투부대를 격멸하기 위한 수색정찰을 실시했다.
이 무렵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제7사단은 제3사단 제23연대를 배속 받아 영월 탈환작전에 나섰다. 사단의 영월 탈환작전은 1951년 1월 19일 제3연대와 제8연대가 각각 주공과 조공으로 만경대산과 연하리의 694고지를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제8연대는 연상리에서 공격을 시작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공격 첫날 694고지를 점령했다.
사단은 곧이어 만경대산 서쪽 6km 지점의 응봉산 탈환에 나섰고, 연대는 조공부대로 583고지를 점령한 후 응봉산을 점령한 제3연대와 연결했다. 사단은 1월 21일 영월에서 단양으로 흐르는 남한강까지 진격하여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했다. 이후 사단은 미 제7사단과 연합작전을 전개하여 영월 시가지 탈환작전을 벌여 이를 탈환하고 퇴각하는 적을 섬멸했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용감하게 앞장서서 돌격하다 적탄에 맞아 1월 29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1-ㄷ-06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