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형(李文衡)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49231
  • 전몰일자 : 19510826

공훈사항

이문형 일병은 1931년 6월 13일 경상남도 밀양군 사북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1년 2월 5일 부산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제7사단 제5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중공군의 제3차 공세를 맞아 37도선 일대에서 공방전을 하고 있었고 제7사단은 영월 일대에서 적과 대치 중인 상황이었다. 유엔군의 킬러작전(2. 21.~3. 6.) 때, 연대는 평창-창동리 도로를 따라 공격하여 평창군 백석산 일대까지 진출했다. 유엔군의 리퍼작전(3. 7.~3. 31.) 때 연대는 평창군과 인제군 일대에서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3월 하순에는 인제군 현리 일대까지 진격하여 적과 대치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연대는 공격을 전개하여 4월 22일 인제군 원통 일대까지 진출했다. 이때 중공군은 제5차 공세(4월 공세)를 시작했고, 제5연대는 4월 23일 제5사단에 배속되어 북한군 제6사단과 격전을 벌이면서 분전했지만, 전투력의 열세에 밀려 인제 서남방의 부평리, 소재 일대까지 후퇴했다.
5월 16일 중공군 5월 공세가 시작되었고, 소양강 변의 부평리, 구만리에 배치된 연대는 중공군 제79·81사단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연대 장병들은 백병전을 펼치며 결사적으로 적을 저지했으나, 압도적인 적의 공격에 밀려 5월 18일에는 풍암리까지 후퇴했다.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저지한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했다. 이때 연대는 6월 7일부터 12일까지 양구 서북방의 군량현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 끝에 ‘신 캔자스선’ 상의 마석봉-504고지-757고지를 잇는 선을 확보했다. 이후 연대는 양구 일대에서 고지를 뺏고 뺏기는 치열한 공방전을 이어갔다.
미 제8군은 전체 방어선 가운데 남으로 만곡부를 이루고 있는 양구 일대의 전선을 밀어 올리도록 미 제10군단에 임무를 부여했다. 이에 따라 연대는 8월 9일 백석산 남쪽의 917고지 일대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여, 장마와 무더위 속에서 피아간에 뺏고 뺏기는 치열한 교전 끝에 적을 물리치고 9월 2일 이를 확보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8월 26일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형 일병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려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28354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3-ㄱ-03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