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현(李文鉉)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23478
  • 전몰일자 : 19520508

공훈사항

이문현 하사는 1927년 12월 20일 경상남도 창원군 동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50년 9월 17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수도사단 제1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연대에 배치될 무렵 국군과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으로 전환하여 추격작전 중이었다. 제3사단은 경북 기계-안강 축선에서 적을 물리치고 청송-춘양-영월-평창-38도선 직후방의 서림리 방향으로 적을 추격하고 있었다. 연대는 10월 1일 38도선을 넘어 10월 10일 원산을, 11월 25일 청진을 점령한 후 부령까지 진출하여 한·중 국경선을 목전에 두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30일 흥남으로 철수했다. 12월 10일 연대는 제3사단과 함께 흥남에서 해상 철수하여 부산에 상륙했고, 25일부로 제3사단으로 예속이 전환되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연대는 평창, 횡성, 현리, 인제 일대를 오르내리며 1951년 5월까지 중공군 제3~5차 공세에 맞서 공방전을 펼쳤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강원도 양양 서쪽의 마산리 일대에 배치되어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고, 양구 동북방 가칠봉으로 이동하여 제5사단의 진지를 인수 후 1,211고지에서 적과 공방전을 펼쳤다. 사단은 1952년 1월 12일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양구군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949고지~석장리 간의 제6사단 진지를 인수했다. 휴전회담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지속되었고, 이곳에서 연대는 진지를 유지하면서 수색정찰, 매복, 적진 기습작전 등을 지속했다.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이 미 제9군단의 전선을 인수함에 따라 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진지를 계속 유지하면서 적과 소규모 진지전과 정찰전을 전개했다. 이 하사는 5월 8일 적의 소규모 침투공격을 받자, 분대원을 이끌고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현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8-ㄲ-03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