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현(李文賢)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8530
  • 전몰일자 : 19500910

공훈사항

이문현 일병은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선으로 철수를 거듭하고 있던 1950년 7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소총 조작법만을 익힌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문현 일병은 미원 전투에 투입되었다. 1950년 7월 16일 미명 미원 북방으로 공격을 개시하여 부흥리 일대에 배치되어 있던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한때 위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연대는 북한군의 진출을 더이상 허용하지 않고 저지하였으며, 다음날에도 전차 3대와 장갑차 12대로 전력을 증강하여 공격을 재개한 북한군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북한군 제2군단의 집요한 공격에 밀려 이 일병과 장병들은 다시 미원 남쪽으로 진지를 전환하였다.
이문현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7월 21일 전선 정리계획에 따라 춘양으로 진출하려던 중 화령장의 상황이 확대되자 보은에서 화령장으로 투입되어 북한군을 저지하였다. 이후 이 일병과 장병들은 지연전을 병행하며 7월 말 낙동강까지 철수하였다. 이문현 일병과 연대병력은 8월 12일부터 칠곡군 가산면 일대에서 다부동 전투를 수행하였다. 북한군은 사단이 방어하고 있는 지역에 5개 사단을 집중해 집요한 공세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유엔 항공기의 지원을 받아 북한군 전차를 파괴하는 등 사격을 가하면서 북한군을 저지하였으나 매일 평균 600여명의 손실이 발생하여 병력이 날로 감소하였다.
이문현 일병과 연대병력은 9월 10일 북한군 제1사단이 가산 일대에서 공격을 재개하자 팔공산 일대로 진출시키고 있었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가산 일대의 정해진 목표를 행해 수차례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그가 방어 전투를 수행하는 고지에서는 수차례 서로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이 반복되면서 북한군과 아군의 시체가 쌓여갔다.
이 일병은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오직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전투에 임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이문현 일병은 1950년 9월 10일 공산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현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0판-6면-06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1-ㅎ-06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