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현(李文鉉)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6403
  • 전몰일자 : 19500912

공훈사항

이문현 일병은 충청북도 보은군 탄부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으로 후퇴하여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있을 때인 1950년 8월 12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문현 일병은 다부동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고령에서 함창에 이르는 낙동강 전선에서 북한군 3개 사단과 대치 중이었다. 북한군은 8월 15일부터 총공격을 재개하였다. 제12연대는 유학산을 탈환하기 위해 공격을 반복하였다. 18일 새벽 가산에서 침투한 일부의 적이 사격한 박격포탄이 대구역에 낙하하자 대구의 위기는 더욱 고조되었고, 대구에는 일시 피난령이 떨어져 일대 혼란에 휩싸이기도 하였으나 곧이은 취소로 민심은 수습되었다.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이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적진 돌파작전을 전개하였다. 이 무렵 북한군도 전차를 새로이 보충받아 보·전 협동으로 전면적인 야간공격을 개시하여 피아간에 치열한 전투가 계속 되풀이 되었다. 쌍방간에 많은 손실을 낸 채 19일에 수암산을 재차 피탈당하고 유학산 일대에서 밀고 밀리는 공방전을 반복하였다.
9월 공세가 시작되자, 이문현 일병과 연대병력은 741고지-팔공산 북방 중앙선까지 담당하여 대구 북쪽의 방어진지 편성에 주력하였다. 대구 북쪽 16km에 위치한 가산(902m)은 중요한 감제고지로서 다부동-대구 간 도로와 대구까지도 감제하는 전술적으로 중요한 고지로써 가산을 탈환하여야 하였다. 9월 6일 가산을 점령한 북한군 제13사단과 제1사단이 다부동 남쪽 도로를 차단하고 대구 간 도로를 감제하는 570고지를 장악하였다.
이 일병은 달려드는 북한군을 수류탄과 백병전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방어하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최선봉에 서서 싸우는 용맹을 발휘하였다. 죽는 순간까지 손에서 총을 놓지 않고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이문현 일병은 1950년 9월 12일 가산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현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4판-4면-26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1-ㅍ-07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