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헌(李汶憲)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20508

공훈사항

이문헌 순경은 1916년 7월 10일 경남 양산군 웅상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경남도경 양산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양산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 순경은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 주공부대는 7월 3일 한강을 도하여 경부가도를 따라 남진했다. 이 무렵 경남 서부지역과 호남지역에는 2-10명의 소규모 공비들이 출몰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와 횟수가 증가했다.
양산경찰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주요 시설·보급로 경비, 철도 경비, 피난민 통제·구호 임무를 수행하다가 7월 14일 밀양에 투입되어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했다. 이어서 양산경찰은 8월 7일 진동리를 방어하던 군경부대가 적의 공세에 밀려 진동리로부터 철수하자 진동리지구를 방어하기 위해 경남경찰의 일부로서 진동리에 투입되었다. 경남경찰은 전남·전북 경찰부대와 함께 8월 14일까지 진동리지구 방어작전을 수행한 후 8월 28일까지 통영 시가지 전투와 원문고개 방어전투에 참여했다.
국군·유엔군의 총반격으로 퇴로가 차단된 북한군은 가까운 산지로 들어가 공비들과 합류하여 게릴라 활동을 전개했다. 이에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의 공비섬멸 작전(1차: 1951.3.10-4.10, 2차: 1951.4.15-5.5, 3차: 1951.7.15-8.15) 지침에 따라 경남경찰은 이 기간에 공비섬멸작전을 수행했다.
양산경찰은 함양에 공비들이 준동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당시 함양에는 미처 퇴각하지 못한 1,000여 명의 공비들이 남아서 지역 일대의 양민들을 학살하거나 식량과 가축을 약탈했다. 양산경찰은 공비소탕작전(11.10-11.20)을 실시하여 40명의 공비를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양산경찰은 이 작전이 끝난 후 양산으로 복귀하여 철도·교량 경비, 공비토벌 작전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1952년 5월 28일 야간에 양산경찰서가 수 명의 공비들로부터 기습 공격을 받았다. 이 순경은 적을 격퇴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공비가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헌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6-ㅍ-08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