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학(李文學)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04918
  • 전몰일자 : 19501201

공훈사항

이문학 일병은 1921년 10월 24일에 경상남도 부산시 동구 범일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20일,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 병으로 차출되어 미 제2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문학 일병이 부대로 전입 했을 때인 9월 중순, 미 제2사단은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9월 16일부터 반격작전을 시작했으나, 북한군이 그들의 후방이 차단된 것을 모르고 낙동강 선에서 강렬하게 저항하였다. 이에 사단은 9월 19일부터 낙동강을 도하 후 북한군을 추격하여 24일에는 합천을 탈취하고 거창-전주-논산을 거쳐 9월 30일에 강경을 탈환했다.
미 제2사단은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덕유산 및 지리산 일대로 숨어 들어간 북한군 패잔병을 소탕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한편 미 제8군의 주력은 10월 초순에 38도선을 돌파하여 북진작전을 실시하여 10월 19일에는 평양을 탈환하고, 24일에는 청천강 선까지 진출했다. 유엔군은 10월 24일에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실시하였으나, 적유령산맥 일대에 은폐해 있던 대규모 병력을 이룬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다시 청천강 선으로 철수했다.
이문학 일병이 소속된 미 제2사단은 후방지역작전 임무를 11월 2일에 국군 제11사단에 인계하고, 북상하여 개천 및 군우리 지역에 투입되었다. 한편 중공군은 11월 7일에 이르자 산악지대로 자취를 감추고 유엔군과 일체의 접촉을 회피하였다. 이에 유엔군은 적정을 모른 채 11월 24일에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실시하여 진격하였으나, 이번에도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공격이 저지되었다.
당시 미 제2사단은 군우리 일대에서 중공군 제40군단으로부터 정면공격을 받고, 중공군 제38군단으로부터는 후방공격을 받아 사면초가에 이르렀고, 피해가 컸다. 이후 12월 1일까지 군우리-순천 사이의 협곡지대인 일명 '태형의 계곡'을 통과하던 중 중공군 제38군단의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받았다. 이날 이문학 일병은 미군 장병들과 함께 포위망을 탈출할 때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학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0판-5면-08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90-ㅍ-02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