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철(이문철)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2900289
  • 전몰일자 : 19501010

공훈사항

이문철 하사는 경상남도 동래군 구포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군인으로 신생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 1월경 제3여단 제18연대에 입대했다. 제18연대는 동년 8월 10일부로 제2사단에서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이 전환되었다. 이 하사는 연대 장병들과 함께 1950년 2월까지 옹진지구전투사령부에 파견되어 옹진반도의 은파산 일대에서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였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18연대(-)는 동두천 축선을 방어하고 있던 제7사단에 배속되어 덕정 서북쪽의 용암리 일대에서 북한군 제4사단과 일전을 벌이다 퇴로가 차단되자 고양을 거쳐 28일 밤 행주나루터에서 한강을 도하하여 김포로 철수했다. 연대는 6월 29부터 7월 4일까지 김포지구전투사령부에 소속되어 김포비행장-오류동-영등포-안양 일대에서 적 제6사단의 공격을 지연시켰다.
7월 5일 제18연대는 제1, 제8연대와 함께 수도사단(수도경비사령부 개칭) 예하부대로 재편되었다. 이후 연대는 진천-청주 북방의 미호천-남일면 성무봉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적의 남진을 지연시켰다. 연대는 8월 3일부터 낙동강방어선에 투입되어 길안-청송 방어선과 의성 북방의 장림리 전투, 영일군 기계전투에 투입되어 북한군 제12사단과 일진일퇴의 격전을 벌였고, 18일 마침내 기계를 탈환하고 적을 비학산 방향으로 패퇴시켰다. 연대는 기계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하여 적과 공방전을 벌였다. 북한군 9월 공세 때 연대는 기계 서측방의 인비동-봉계동의 고지군과 안강 남쪽의 홍계동 고지 일대에서 치열한 교전 끝에 적을 격퇴함으로써 기계-안강-경주 축선의 돌파 위기를 해소할 수 있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반격으로 전환했고, 연대는 18일에 안강을, 21일에는 기계를 각각 탈환했다. 국군은 공격한계점에 이른 적이 퇴각하자 9월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23일 적을 추격하여 청송-춘양-영월-평창-38도선 직후방의 서림리(9월 30일)까지 적의 가벼운 저항을 물리치고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10월 1일 38도선을 넘어 북진을 개시한 연대는 10월 4일 강원도 간성을 점령한 후, 원통-양구-회양-신고산-안변 방향으로 우회하여 진격했다. 연대는 10일 원산을 공격하여 강력히 저항하는 적을 물리치고 이를 점령했다. 원산 전투에서 이 하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앞장서서 공격하다 10월 10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철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1면-11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2-ㄹ-08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