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천(李文千)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399556
  • 전몰일자 : 19520912

공훈사항

이문천 일병은 1926년 1월 1일에 출생했다(출생지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2년 3월경 입대 후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 수료 후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전입할 당시 제8사단 제21연대 장병들은 경기도 남양주군 퇴계원면에서 잠시 부대를 정비한 후 1952년 3월 미 제10군단에 배속 전환되어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노전평으로 이동했다. 1952년 3월에 접어들면서 휴전회담은 비행장문제, 중립국감시위원단 구성문제, 포로문제로 인하여 교착상태를 면하지 못했다.
이는 이러한 쟁점이 쌍방에게 군사적 승리를 대신한 정치적 승리를 핵심목표로 두었기 때문이다. 협상이 정체되자 유엔군 측에서는 이들 3가지 문제를 한데 묶어 일괄타결하기로 했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일괄타결이야말로 정체 상태에 빠져든 휴전협상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간주했다. 이러한 시기에 제8사단은 1952년 3월 23일에 미 해병대 제1사단으로부터 노전평 북방 854고지, 812고지 작전지역을 인수했다.
그리고 미 해병대 제1사단으로부터 노전평 북방 854고지, 812고지 작전지역을 인수하여 1952년 5월 1일부터 5월 5일까지 심리전을 벌였다. 이후 제21연대는 1952년 9월까지 북한군과 대치한 상황에서 대북방송을 통한 심리작전을 펼침과 동시에 항공기로 폭격을 가하며 진지 보수와 적정파악을 위한 소규모 수색작전 또한 진행했다.
북한군은 1951년 9월에 뺏긴 854고지에 대해 공격을 기도하고 있었고 이어 1952년 9월 국군의 812고지와 854고지에 14,288발의 포탄을 발사했다. 이에 피아간에 백병전이 전개되었고 제8사단 제21연대 장병들은 끊임없이 침입하는 북한군으로부터 854고지를 빼앗겼다. 하지만 제8사단 제1, 3중대 및 전차중대가 노출된 측면을 사수하며 다시 확보했다. 결국 제21연대를 포함한 제8사단 연대들은 근접전을 전개하며 북한군을 격퇴하고 주저항선을 확보하였고, 적의 돌파구를 완전히 봉쇄하며 역습을 통해 고지를 완전히 재선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일병은 1952년 9월 12일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천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9판-4면-051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7-ㅋ-10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