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주(李文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25708
  • 전몰일자 : 19510214

공훈사항

이문주 일병은 1926년 11월 8일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중공군의 참전으로 조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구하고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11월 11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후의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크리스마스 공세계획을 준비하고 있었고, 제7사단은 평남 개천 북방의 비호산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연대는 크리스마스 공세계획에 따라 11월 22일 묘향산을 공격했으나, 그 남방에서 중공군 제38군과 제42군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악전고투 끝에 27일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연대는 미 제8군 철수계획에 따라 12월 3일부터 승호리-신계-시변리-연천을 거쳐 12월 15일 춘천으로 철수했다.
38도선으로 철수한 미 제8군은 김포반도-임진강-화천-양양을 연하는 선을 주저항선으로 선정한 후 포천-김화 도로를 중심으로 중서부전선은 미군에, 동부전선은 국군에 방어임무를 부여했다. 사단은 춘천 부근의 38도선 일대에 진지를 편성하고 방어준비에 매진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연대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됨에 따라 상급부대 계획에 따라 자은리를 거쳐 횡성 북방으로 철수했다. 그러나 북한군 제5군단이 원주 지역에 깊숙한 돌파구를 형성하고, 제2군단이 경북 안동까지 종심깊게 침투함에 따라 연대는 또다시 철수하여 1951년 1월 8일 영월 북서방의 서벽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이 무렵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제3군단은 제3사단 제23연대를 제7사단에 배속하여 영월을 탈환하도록 했다. 제3연대는 1월 19일 사단의 주공으로 만경대산을 공격하여 이를 점령하고, 20일 영월 탈환의 관건이었던 응봉산을 공격하여 치열한 교전 끝에 이를 점령했다. 이어 연대는 24일 영월로 진격하여 이를 탈환하고 퇴각하는 적을 섬멸했다.
2월 11일 개시된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 연대는 북한군 제2군단의 집중 공격을 받고 평창 일대를 내주고 후방으로 후퇴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진지를 사수하며 용감히 싸우다 적탄에 맞아 2월 14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주 일병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5220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위패(33판-40면-21877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1-ㄴ-09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