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재(李文宰)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2901449
  • 전몰일자 : 19510907

공훈사항

이문재 하사는 1929년 12월 29일 경기도 연백군 청위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과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2월경 제2여단 제18연대에 입대했다. 연대는 동년 8월 10일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 전환되었다. 이 하사는 동년 9월부터 1950년 1월까지 옹진지구전투사령부에 파견되어 은파산 일대에서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였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18연대는 덕정, 한강방어선의 김포비행장, 영등포, 안양 일대에서 혈전을 벌이면서 적의 공격을 지연시켰다. 7월 5일 연대는 제1, 제8연대와 함께 수도사단(수도경비사령부 개칭) 예하부대로 재편되었다. 이후 연대는 진천-청주-남일 일대에서 적의 남진을 지연시켰고, 8월 3일부터 낙동강방어선의 길안, 청송, 의성, 기계전투에 투입되어 북한군 제12사단을 격퇴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사단은 9월 23일부터 추격작전을 실시했다. 연대는 적을 추격하여 10월 1일 38도선을 넘어 간성-회양-안변으로 진격했다. 연대는 10일 원산을, 17일 함흥을 점령하고, 28일 개마고원 일대에 다다랐다. 연대는 30일 부령까지 진출하여 한·중 국경선을 목전에 두었으나, 이날 상급부대 명령에 따라 흥남으로 철수했다. 12월 10일 연대는 제3사단과 함께 흥남에서 해상철수하여 부산에 상륙했고, 15일부로 제3사단으로 예속이 전환되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는 1951년 1월 2일 평창으로 철수했다.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 연대는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유엔군의 리퍼작전(3월) 때는 38도선 상의 현리 일대에서 공방전을 벌였다. 그리고 중공군 4월 공세 때는 인제의 한석산, 매봉 일대에서 적과 격전을 치렀다. 중공군 5월 공세 때 연대는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방태산-하진부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연대는 5월 말 양양 서쪽의 마산리 일대에 배치되어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이 하사는 9월 7일 분대원을 이끌고 고성 일대에 대한 수색정찰작전 중에 적 정찰대와 조우하여 전투 중에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재 하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07 국)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7-ㄲ-06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