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재(이문재)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14722
  • 전몰일자 : 19520918

공훈사항

이문재 중위는 1951년 5월 초순에 국가의 간성이 되기 위한 큰 뜻을 품고 동래의 육군보병학교로 입교하여 6개월간의 기본적인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1951년 11월 24일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출생지 및 출생 일자 미상).
이문재 중위가 부임할 당시 수도사단은 후방지역 공비들의 수가 급속도로 증가하여 후방치안의 확보가 점차 어려워지게 됨에 따라 이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1952년 2월부터 백아산, 모후산, 조계산 지구에 대한 소탕 작전과 반복 수색을 전개하였고 이후 5월 금성-북한강 동안까지의 전선을 인수하여 동부전선을 방어하고 있었다. 이 중위는 장병들을 지휘하여 화천 일대 금성천 북안 일대에서 정찰 활동을 수행하던 중 북한군과 마주치게 되어 교전을 벌여 중공군 여러 명을 사살하는 수훈을 세웠다.
이문재 중위의 지휘 아래 사단 일부 병력은 1952년 7월 8일 지형능선을 공격해 점령했으나 북한군의 역습을 받아 물러났다. 전선은 7월과 8월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에서 각각 한 차례씩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전개되었으며 그 뒤 8월 중순에 접어들어 다시 교착상태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9월 6일 북한군은 맹렬한 공격준비사격을 가한 후 고지 좌우측 계곡으로 공격해왔다. 이에 이 중위와 장병들은 최후까지 분전했으나 수도고지는 함락되었다. 이어 9월 9일 고지탈환 임무를 부여받은 연대는 공군의 근접지원과 포병의 지원 아래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때 그는 앞장서서 고지를 향해 돌진해 고지를 점령하였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위기에 놓인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공방전을 계속하며 투혼을 발휘하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앞장서서 솔선수범하는 소대장이었다. 전투 경험이 부족한 장병들을 지휘해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문재 중위는 1952년 9월 18일 지형능선전투에 참가하여 고지를 향해 돌진하던 중 북한군이 투하한 포탄 파편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재 중위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4953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109-ㅇ-06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