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재(李文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40360
  • 전몰일자 : 19510406

공훈사항

이문재 일병은 경기도 김포에서 1926년 4월 6일에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11월경 입대 후 제8사단 제10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로 전입한 후 1951년 2월경에, 제8사단 10연대는 중공군의 신정공세로 38도선 상의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홍천 일대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제8사단 제10연대 장병들은 당시의 혹한과 강설로 안전한 진지 구축이 어려웠으나, 적의 주 접근로에 지뢰와 장애물을 설치하여 공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이러한 제8사단 10연대 장병들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좌·우측 전선이 돌파되었기에 제8사단 10연대는 강원도 홍천군 방면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철수를 완료한 제10연대 장병들은 2월경 강원도 횡성군에 주저항선을 설치하고 적의 공세에 대비해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전열을 가다듬은 중공군은 1951년 2월 11일부터 제4차 공세를 가해왔는데, 당시 제10연대는 중공군의 유인책에 걸려들어 포위되어 극심한 타격을 받았다.
결국 제8사단은 이 전투에서 제8사단의 지휘부를 비롯한 장교 300여 명과 사병 7000여 명이 전사·실종되고, 남은 인원은 3000여 명에 불과하게 되었다. 이후 제8사단 잔여 병력은 대구로 이동하여 부대를 재편성하게 되었다.
제8사단 10연대는 부대를 재편성한 후 육군본부 직할대로 소속이 변경되어 후방경계임무에 투입되었다. 이 일병과 제10연대 장병들은 전력 보강 이후 1951년 4월 3일 호남지구 무장공비토벌작전을 수행했다.
이들은 민가, 도로, 행정시설 등에 대한 유격 활동을 전개했는데, 당시 금산·정읍·순창·부안군 일대에 지역 좌익 및 북한군 낙오병이 합세함에 따라 공비는 약 3,000여 명에 달했다. 이 일병은 공비토벌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1951년 4월 6일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재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04판-5면-16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1-ㅋ-09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