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우(李文宇)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8231
  • 전몰일자 : 19500714

공훈사항

이문우 일병은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1년 2월경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이어 포병훈련소에서 박격포 주특기훈련을 받고 육군직할 제108중박격포중대에 배치되었다.
4.2인치 중박격포중대는 국본 일반명령 제27호에 의거 1950년 12월 9일 제101중박격포중대가 창설된 이래, 제102·103·105·106·107·108중박격포중대가 연이어 창설되었다. 제108중박격포중대는 제3사단에 배속 운용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 일대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었고, 제3사단은 경강국도 상의 강원도 인제군 현리-하서림을 잇는 선에서 적과 공방전을 펼치고 있던 상황이었다. 유엔군은 4월 3일부터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구-양양을 잇는 선) 확보를 목표로 러기드작전(Operation Rugged)을 개시했다. 이때 제3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진격했고, 4월 20일까지 강원 인제군 한계리 일대까지 진출하여 캔자스선을 확보했다.
4월 22일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가 시작되었고, 사단 정면에는 북한군 제6사단이 투입되었다. 사단 장병들은 4일 동안 치열한 백병전을 전개한 끝에 기어이 한석산과 가리봉 일대를 지켜냈다. 5월 16일 중공군 5월 공세가 시작되었다. 사단은 유일한 보급로 상의 오미재 고개가 차단당한 가운데 북한군 제5군단의 공격을 받자 현리로 물러섰고, 17일 사단 장병들은 적의 포위망을 뚫고 험준한 방태산을 넘어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이 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평창 송계리에서 부대정비를 한 사단은 5월 말 양양, 간성 일대에 배치되어 10월 19일까지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여 수색정찰작전과 매복작전 등을 지속했다. 이 일병은 간성 일대의 수색정찰작전 중에 7월 14일 적 정찰대와 조우하여 교전하다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80-ㄲ-04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 전사자 명부에는 제108연대 소속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동 부대는 존재하지 않았던 부대이므로 오기로 추정하고 소속을 제108포병대로 조정하고, 전몰일자도 동 부대 창설 이후인 1951-07-14로 조정하여 작성함.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