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우(李問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530439
  • 전몰일자 : 19510918

공훈사항

이문우 일병은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9월 중순에 경남 삼랑진의 육군 제6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11사단 제20연대로 배치되었다.
제20연대는 7월 5일 평택에서 해체되었다가 9월 25일에 삼랑진의 육군 제6훈련소를 모태로 하면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부터 병력을 지원받아 창설되었다. 이때 이문우 일병은 제20연대 창설 요원으로 참가하였다. 연대는 10월 초순에 광주지역으로 이동하여 지리산 서남쪽 지역에서 공비 토벌작전을 실시했다. 그리고 1951년으로 접어들면서 회문산과 백아산 일대에서 중대 규모 이상 단위로 활동하던 공비들을 대대적으로 소탕하여 세력으로서의 공비 활동을 완전히 소멸시켰다.
이문우 일병이 소속된 제11사단은 4월 6일에 공비토벌임무를 제8사단에 인계하고, 4월 중순에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었다.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공산군 4월 공세와 5월 16일부터 시작된 공산군의 5월 공세을 맞아 철수를 거듭하다가 대관령-강릉 선에서 적의 진출을 저지했다. 사단은 5월 22일부터 재반격작전을 개시하여 강릉-양양-향로봉(간성)-건봉산 방향으로 진격하여 6월 10일에는 건봉령을 좌우로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후 전선은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제11사단은 유엔사의 작전지침에 의거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향로봉 북쪽의 884고지를 탈취하기로 하고, 8월 18일부터 먼저 제9연대가 공격했다. 제9연대는 8월 25일까지 공격에서 두 차례 탈취했으나 적의 역습으로 다시 빼앗겼다. 이에 이문우 일병이 소속된 제20연대가 8월 27일부터 공격하여 29일에 치열한 전투 끝에 884고지를 탈취하는 데 성공했다. 이 884고지는 전초기지로 운용하면서 진지보강과 수색정찰에 집중했다. 그가 소속된 중대는 9월 18일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매복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로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73-ㅋ-06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