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용(李文鏞)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1802137
  • 전몰일자 : 19500825

공훈사항

이문용 이등중사는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서 1927년 12월 6일에 출생하였다. 이 이등중사는 1947년 6월 1일에 입대한 후 제10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등중사가 입대한 후 제8사단은 강릉지역에 창설되어 인제군으로부터 양양군 일대에 이르는 지역의 경계를 담당하며 후방에 침투하는 적 유격대에 대한 토벌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북한군 제5사단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엄청난 포병 화력의 지원을 받으며 7번 도로 축선에 투입하여 주문진으로 진격을 개시했다.
이에 강릉에 있던 제8사단은 제대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지연전을 펼쳤지만, 적의 화력에 주문진을 상실하고 철수를 시작했다. 제8사단 제10연대는 1950년 6월 26일과 27일에 걸쳐 주문진 탈환을 위한 반격을 준비했다. 하지만 적의 방어가 견고하여 다시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결국 국군과 함께 1950년 6월 27일 대관령을 통해 원주군 방면으로 철수하며 3일 만에 강릉지역을 북한군에게 넘겨줘야 했다.
1950년 8월 1일, 이른 새벽부터 북한군 제12사단은 안동 동측으로 우회하여 안동을 습격할 계획을 하고 있었다. 제8사단은 이에 안동교를 파괴하였지만, 북한군은 안동읍에 집결하였다. 다음날 북한군은 안동군에 집결하여 안강 방면으로 이동하였다. 북한군 제7사단은 도하를 기도 중이었고 맥현 또한 북한군에 점령되어 있었다.
국군은 1950년 8월 10일 북한군 제7사단이 기계 방면으로 이동했다는 제보에 격퇴를 위한 전투를 벌였다. 제8사단은 도평 337고지, 361고지에서 침입하는 적을 치열한 접전 끝에 저지하였고 수석봉에 진출하여 방어태세에 돌입하였다. 이후 제8사단은 그 일대에 유격대를 배치함으로써 고지를 점령하였다. 하지만 북한군은 1950년 8월 19일 용마산 방면으로 끊임없이 침투하여 제8사단과 교전했다. 제8사단은 1950년 8월 22일 515고지와 함께 633고지를 점령하고 공격을 개시하여 북한군을 패주시켰다..
북한군은 569고지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국군의 방어진지를 기습하였으며, 제8사단은 수색대를 파견하여 정찰하며 북한군의 역습을 격퇴했다. 북한군은 1950년 8월 25일 보현산 북방 도처로 침입했다. 제8사단은 항공기로 북한군의 주저항선 및 방어진지에 대대적인 폭격을 가했다. 또한, 국군은 방어진지 구축과 함께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 이등중사는 1950년 8월 25일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용 이등중사의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8538 육)을 추서하고 그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7-ㅎ-07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