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용(李文龍)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K1110444
  • 전몰일자 : 19510718

공훈사항

이문용 상병은 1925년 7월 7일 부산시 서구 하단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하자 조국통일의 선봉이 되고자 일어섰다. 이 상병은 1950년 9월 하순 부산에 설치된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카투사(KATUSA)에 선발되어 미 제24사단에 배치되었다.
이 상병은 첩보수집, 포로신문, 편의대 활동 등으로 사단의 작전에 기여한 후, 11월 경 제3사단 제22연대로 전속되었다. 연대는 11월 4일 신북청으로 북상했다. 11일 연대는 길주-백암-혜산진으로 북진하여 30일 연대의 선두부대가 한·중 국경선의 혜산진에 도달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이날 하달된 미 제10군단장의 철수명령에 따라 성진-흥남으로 철수했다. 12월 10일 연대는 흥남에서 해상철수를 개시하여 구룡포에 상륙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이때 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공격을 받고 평창으로 철수했다. 2월 11일 중공군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는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이후 국군은 공세로 전환하여 3월 7일부터 리퍼작전을 전개했고, 연대는 제3군단에 배속되어 3월 말 38도선 상의 현리 일대까지 진출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연대는 4월 20일까지 강원 인제군 한계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4월 22일 시작된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 때 연대는 인제의 한석산, 매봉 일대에서 북한군 제6사단을 물리쳤다. 5월 16일 중공군 제5차 공세(5월 공세)가 시작되었다. 사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오미재 고개가 차단당한 가운데 북한군 제5군단의 공격을 받자 장병들은 장비를 파괴하고 방태산으로 후퇴하여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연대는 강원도 양양, 고성 일대에서 10월 19일까지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이 상병은 전투마다 솔선수범하여 진두에 나섰고, 수색정찰작전 간에도 앞장서다가 7월 18일 고성에서 적 정찰대의 기습을 받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용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7-ㄴ-05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