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오(李文五)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401156
  • 전몰일자 : 19500926

공훈사항

이문오 일병은 1925년 3월 19일 경상남도 창녕군 유어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6월 26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육본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은 국군은 부족한 장비와 병력으로 이를 저지하기 위해 직할부대를 전투부대로 동원해 의정부지구에 중점을 두면서 서울방어를 위해 노력을 경주하였다. 육군은 우선 육군본부 직할의 모든 재경부대를 동원해 전방의 제1사단과 제6사단, 제7사단에 배속시켜 방어력을 증강하였다.
따라서 6월 25일 수도사령부 예하 제3연대를 제7사단에 배속한 데 이어 오후에는 제18연대(-1)마저 추가로 배속하였으며, 제8연대를 제6사단에 배속해 가평지구로 투입하였다. 6월 26일 저녁에는 육본 장교연대를 의정부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시켜 창동 지역에 배치하였다.
이문오 일병과 일부병력은 철수와 방어로 이어진 수세적인 전투만 전개하던 중 일시공격으로 전환해 혼성대대 병력이 동두천을 탈환하고 소요산까지 진출하였으나, 곧 이은 북한군의 대규모 반격으로 의정부 방면으로 철수하였다. 국군은 의정부-창동-미아리 방어선에서 육탄공격까지 감행하면서 결사적으로 저항하였으나, 전투력의 열세로 수도 서울을 북한군에게 내어주고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여 6월 28일부터 7월 4일까지 한강선 방어 작전을 전개하였다. 이후 이 일병과 일부병력은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축차적으로 지연전을 실시하여 7월 말에는 낙동강에 이르렀다. 국군은 유엔군과 함께 낙동강 선에서 강력한 방어 작전을 전개하여 북한군의 공세를 꺾었다. 이후 9월 15일의 인천상륙작전에 이어 공세로 전환한 이 일병과 장병들은 북진작전에 돌입하였다.
이 일병은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오직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전투에 임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문오 일병은 1950년 9월 26일 북진작전에 참가하여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적이 쏜 총탄에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오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4판-1면-15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82-ㅅ-09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