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영(李文英)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128077
  • 전몰일자 : 19520617

공훈사항

이문영 일등중사는 1927년 3월 15일에 경상북도 금릉군 어해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1차 공세로 개천으로 집결한 1950년 11월 15일,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문영 일등중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950년 12월 하순, 제6사단은 동두천 북방의 전곡-백의리를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얼마 후 중공군의 1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받고, 제6사단은 진지에서 철수하여 장호원까지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후 사단은 용문산-가평-화악산-백암산 축선에서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공세와 유엔군의 반격작전으로 6월 중순에는 백암산을 좌우로 잇는 고지군까지 진출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제6사단은 휴전회담이 진행되면서 부분적인 공세행동은 있었으나 대체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이후 사단은 1952년 1월 10일부로 미 제9군단에서 배속 해제되어 양구 일대로 이동하여 전기전술을 숙달하는 교육훈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3월 22일에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김화 부근의 거리실, 원남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40사단으로부터 방어진지 일부를 인수하여 봉화산(477고지)-교암산(770고지)을 잇는 고지군에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그리고 사단은 3월 29일부로 백 전투사령부로 배속되었다. 백 전투사령부는 4월 5일부로 국군 제2군단으로 개칭되었다.
이문영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봉화산-442고지 일대의 방어진지를 보강하면서 주간에는 수색정찰, 야간에는 매복작전에 집중했다. 이후 쌍방 간에 큰 전투는 없이 소강상태가 계속되었으나, 그러던 중 상급부대에서 포로교환 문제로 교착된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진지 전방에 대한 공세행동을 강화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이에 이문영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6월 11일부터 15일까지 방어진지 전방의 무명고지(금성천 동북방 A, B고지)를 공격하여 군사적 압박을 가했다. 그러나 적의 강력한 저항으로 무명고지를 탈취하는 데 실패하고, 전진기지인 575고지로 복귀하여 진지를 강화했다. 그는 6월 15일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제3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6월 17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영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30묘역-판-2567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5-ㅌ-02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