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영(李文永)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710

공훈사항

이문영 경사는 1926년 3월 15일 충북 괴산군 장연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충북도경 진천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청주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 경사는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기습남침을 감행하자 치안국은 전시 비상경비총사령부 체제로 전환했다.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고 북한군이 남으로 진군하자 진전경찰은 평택-진천, 장호원-진천, 음성-진천을 잇는 주요 도로 경비, 진천의 주요 시설·교량 경비,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7월 3일 이 경사는 진천 이월면에서 음성 방면의 도로를 경비하던 중 북한군 정찰부대로 추정되는 1개 소대규모의 적과 조우하여 이 경사의 경비 팀과 적 부대 간 교전이 벌어졌다. 약 1시간가량의 전투 끝에 이 경사의 팀은 적 3명을 사살하였으며, 이 경사의 경비 팀원도 2명이 전사했다.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남하함에 따라 군경부대가 축차적으로 남쪽으로 이동하였고, 진천경찰도 남쪽으로 점진적으로 이동했다. 7월 10일 북한군 제15사단이 음성을 공격하자 진천경찰이 포함된 충북 경찰부대는 적의 공격부대를 유리한 지형으로 유인하여 타격을 가했다. 그러나 병력과 화력의 열세로 충북 경찰부대의 일부는 단양 방면으로, 일부는 괴산을 경유하여 청주 방면으로 후퇴했다. 이날 이 경사가 소속된 경찰부대가 청주 내덕에 도달했을 때 천안 방면에서 남하한 북한군의 일부 부대가 이미 청주에 외곽에 진입하여 청주를 위협하고 있었다.
이 경사가 소속된 진천 경찰부대가 천안 방면에서 남하한 북한군과 조우하여 전투가 벌어졌다. 이에 이 경사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적을 공격하여 3명을 사살하고 계속해서 전투를 하던 중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영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5-ㅈ-02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