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열(李文烈)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5704124
  • 전몰일자 : 19501014

공훈사항

이문열 하사는 1927년 1월 22일 전라북도 완주군 삼레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 8월경 육군 포병학교에 입대하여 복무하다 제7사단 제3연대로 전속되었다. 제3연대는 1950년 1월 15일부로 제5사단에서 제7사단으로 예속 전환되었다가 동년 6월 15일부로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이 변경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3연대는 포천 후방의 송우리와 창동방어선, 한강방어선의 역삼리, 과천, 군포 일대에서 적의 공격을 지연시켰으나, 전투력 손실이 심해 7월 5일 해체되었다. 7월 16일부터 연대는 민부대(민기식 부대)의 일부로서 임실-남원-운봉-함양-하동-진주로 철수하면서 지연전을 펼쳤다. 이후 연대는 미 제25사단에 배속되어 함안의 괘방산, 서북산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낙동강방어선을 지켜냈고, 포항이 위험에 빠지자 이곳에 투입되어 적을 몰아냈다.
연대는 8월 20일 대구에서 제5·8연대와 함께 제7사단 예하부대로 재창설되었다. 연대는 신녕지구 전투에 투입되어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9월 2일 북한군 9월 공세 때 기계-안강 축선이 북한군 제12사단의 돌파로 위협을 받자, 연대는 9월 3일 수도사단에 배속되었다. 이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경주 부근의 무릉산 일대에 곧바로 배치되어 9월 6일부터 13일까지 수류탄전과 백병전을 거듭하는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을 격퇴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의 마지막 위기를 극복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국군은 9월 22일부로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때 사단은 미 제8군 예비로 경주에 집결해 있다가 9월 29일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사단은 추격작전 때 제8사단을 후속하여 경주-안강-안동-문경-수안보-충주-장호원을 거쳐 10월 7일 청량리에 도착했다.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한 연대는 김화를 거쳐 11일 평강에 진출하여 이 지역 잔적소탕을 했다. 이 추격전에서 이 하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선두에서 진격했고, 평강지역 잔적 소탕작전에서도 앞장서서 적을 찾아 격멸하다 10월 14일 북한군 패잔병의 기습을 받고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열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49-ㄷ-08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