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암(李文岩)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0305
  • 전몰일자 : 19500719

공훈사항

이문암 일병은 경상남도 창원군 동웅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 6월경 제3사단 제5연대에 입대했다. 동년 7월 10일 제5연대는 제2사단으로 예속이 변경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전에 위치하고 있던 제5연대(-)는 전투준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소총탄 8~30발 정도만 휴대하고 의정부 북방의 축석령으로 투입되었다. 연대는 6월 26일 아침, 전날 송우리에서 국군 제3연대(-)를 격파한 제3사단과 제107전차연대를 맞아 분전했으나, 적 T-34 전차를 막을 수 있는 무기가 없었던 탓에 돌파당하고 말았다.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27일 창동 방어선에 투입되어 혈투를 벌였으나, 전투력의 절대적인 열세 속에서 적 전차에 의해 또다시 돌파당할 수밖에 없었다. 연대 장병들은 분산 철수하여 28일 광나루에서 한강을 건넜다.
연대는 29일 밤 수원에서 긴급 재편성을 한 후, 시흥지구전투사령부 예하의 혼성 제2사단에 편성되어 30일 오후 4시에 말죽거리 동쪽의 95고지 부근에 배치되었다. 제5연대는 30일 북한군 제3사단 제8연대의 남진을 지연했고, 7월 1일 과천 일대로 철수하여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7월 3일 제2사단은 과천 지역을 제3사단에 인계했고, 연대는 안양 남쪽의 426고지에 배치되었다. 7월 4일 북한군 제4사단은 안양 읍내로 진출한 후 곧이어 전차를 앞세우고 제5연대 진지에 공격을 가했다. 연대는 가용한 전 화기를 적 전차에 집중했으나, 적 전차는 손상 없이 연대 진지를 돌파하여 남진했고, 연대는 수원으로 철수했다.
미군의 투입으로 국군이 중동부전선을 담당하게 되자 제2사단은 7월 13일 문의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적의 남진을 지연시켰다. 7월 16일 이후 제5연대는 보은군 회인 일대와 청주 일대에 배치되어 북한군 제2사단의 공격을 지연했으나, 전투력이 극히 저하되어 7월 25일 해체되어 제11연대에 편입되고 말았다. 일련의 지연전에서 이 일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앞장서서 싸우다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7월 19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암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48-ㅋ-02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