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식(李文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3101261
  • 전몰일자 : 19510709

공훈사항

이문식 일등중사는 1928년 10월 7일 경기도 옹진군 서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1949년 2월 15일 제3여단에 입대하여 제2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등중사는 1950년 3월까지 경북지역에 침투한 공비 소탕작전에 앞장섬으로써 북한군의 후방교란 기도를 분쇄하는 데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22연대는 서울로 이동하여 고양과 한강방어선의 금곡리, 풍덕천 일대에서 북한군 제3사단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며, 조치원-청주-보은 일대로 지연전을 펼치면서 적의 남진을 저지했다. 연대는 제3사단으로 원대 복귀하여 7월 26일부터 9월 14일까지 동해안 축선의 강구, 영덕, 흥해, 포항, 형산강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뺏고 뺏기는 공방전 끝에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총반격태세로 들어갔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연대는 강릉(30일)을 탈환하고, 10월 2일 38도선을 돌파하여 10월 10일 원산을 점령했다. 연대는 11월 11일부터 길주-백암-혜산진으로 북진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하여 구룡포에 상륙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이때 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공격을 받고 평창으로 철수했다. 1951년 2월 11일 중공군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는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이후 국군은 공세로 전환하여 3월 7일부터 리퍼작전을 전개했고, 연대는 제3군단에 배속되어 3월 말 38도선 상의 현리 일대까지 진출했고, 4월 20일까지 강원 인제군 한계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4월 22일 시작된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 때 연대는 인제의 한석산, 매봉 일대에서 북한군 제6사단과 격전 끝에 결국 주방어선인 한석산을 지켜냈다. 5월 16일 중공군 제5차 공세(5월 공세))가 시작되었다. 연대는 사단의 유일한 보급로 상의 오미재 고개가 차단당한 가운데 북한군 제5군단의 공격을 받아 방태산을 넘어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사단은 5월 말부터 양양, 간성 일대에 배치되어 10월 19일까지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이 일등중사는 7월 9일 간성 일대에서 실시된 수색정찰작전 간 소대원을 이끌고 앞장서서 적을 찾다 적 정찰대의 기습을 받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식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유해(45묘역-10판1145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7-ㅍ-04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