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식(李文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상사
  • 군번 : 2900867
  • 전몰일자 : 19530717

공훈사항

이문식 일등상사는 1926년 10월 20일 황해도 연백군 용도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1949년 1월 18일 제18연대에 입대하여 복무하다 제6사단 제8연대로 전속되었다.
제8연대는 1950년 6월 20일 홍천에서 서울로 이동하여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되었고, 이틀 후에 전쟁을 맞았다. 연대는 김포, 영등포 일대에서 적과 싸웠고, 진천-미호천-보은-안동 일대로 지연전을 펼치다 전투력의 소진으로 7월 23일 해체되었다. 8월 20일 연대는 제7사단 예하부대로 재창설되어 신녕지구 전투와 영천전투에서 적의 돌파를 저지하고 영천을 탈환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에서의 최대 위기를 극복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유엔군은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연대는 경주-안동-문경-충주를 거쳐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했다. 연대는 김화-평강-율리를 거쳐 20일 북한군 잔적을 소탕하고 평양을 탈환함으로써 제1사단과 더불어 최초로 평양을 점령한 부대가 되었다. 북진을 계속한 연대는 11월에 평안남도 개천 동북방의 비호산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했으나, 묘향산 전방에서 중공군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이후 연대는 승호리-신계-시변리-연천-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12월 15일 춘천 동북방의 38도선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 제3차 공세부터 1951년 5월의 중공군 제5차 공세(5월 공세)까지 연대는 중동부 전선의 영월-평창-인제 축선을 오르내리며 중공군 또는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유엔군은 5월 말 공세로 전환했다. 이때 연대는 6월 초순 양구 서북방의 군량현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을 펼쳤다. 연대는 8, 9월 동안 백석산과 그 주변 고지 일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으나, 백석산 주봉 탈취에는 실패했다. 사단은 11월 20일 다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백석산 북방의 1,090고지~931고지~암동~319고지를 있는 제8사단의 전선을 인수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1,090고지 전방의 전초진지인 크리스마스고지에서 1952년 10월까지 중공군 제68군 예하 제204·202사단의 3차에 걸친 공격을 막아내며 이 고지를 지켜냈다.
사단은 1953년 6월 17일 제20사단의 좌측 전선을 인수하여 백석산 전방의 938고지 일대의 주저항선 방어에 임했다. 6월 25일 중공군 제179사단이 938고지를 공격했고, 연대 장병들은 7월 1일까지 백병전을 펼치며 분전했으나 결국 이 고지를 탈환하는 데 실패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등상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솔선수범하며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7월 17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식 일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위패(33판-1면-17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4-ㅍ-09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