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식(李文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49056
  • 전몰일자 : 19510527

공훈사항

이문식 일병은 경기도 수원시 세류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조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1950년 12월 30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공병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 제3차 공세에 밀려 37도선 일대로 철수하여 전열을 정비하고 있었고, 제3사단은 평창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2월 11일 중공군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감행했고, 사단은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이후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하여 2월 21일부터 킬러작전을, 3월 7일부터 31일까지 리퍼작전을 전개했고, 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3월 말 38도선 상의 현리 일대까지 진출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사단은 4월 중순 한계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4월 22일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가 시작되었고, 사단 정면에는 북한군 제6사단이 투입되었다. 사단 장병들은 4일 동안 치열한 백병전을 전개한 끝에 기어이 한석산, 가리봉 일대를 지켜냈다.
5월 16일 중공군 5월 공세가 시작되었다. 사단은 유일한 보급로 상의 오미재 고개가 차단당한 가운데 북한군 제5군단의 공격을 받자 현리로 물러섰고, 17일 사단 장병들은 적의 포위망을 뚫고 험준한 방태산을 넘어 철수했다. 사단은 적의 끈질긴 추격을 받아 수많은 장병이 전사한 가운데 5월 20일 하진부리까지 철수해서야 겨우 병력을 수습할 수 있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사단은 제3군단에서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평창 송계리에서 부대정비를 한 사단은 5월 말 양양, 간성 일대에 배치되어 10월 19일까지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이 일병은 공병대원으로서 방어 전투에서는 최후까지 남아서 장애물을 설치했고, 공격 전투에서는 가장 앞장서서 적 장애물을 제거해 왔다. 하지만 그는 5월 27일 양양 일대에서 보급로 경계작전 중에 적과 조우하여 교전 중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7-ㄴ-03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