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식(이문식)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0335753
  • 전몰일자 : 19500912

공훈사항

이문식 상병은 경기도 인천시 선린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선으로 철수하던 1950년 8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단기간의 기초군사훈련만 받고 제6사단 제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문식 상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8월 하순, 제6사단 장병들은 신녕 북방의 370고지 일대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가 전입하기 전인 8월 중순에는 위천 북쪽 1∼3㎞ 지점에서 국통산∼청노동을 연결하는 연결하는 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곳은 적의 주요 접근로로 예상되는 의성∼우보∼신녕 축선의 방어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곳이었다. 사단 장병들은 8월 12일부터 시작된 북한군의 계속된 대규모 공격을 격퇴했다. 그리고 8월 18일 새벽 3시 무렵 적의 공격을 받고 13시간 동안 치열한 격전 끝에 진지에서 철수했으나, 주간에 역습으로 전환하여 밤 8시에는 방어선을 회복했다. 이후 8월 26일까지 국통산을 포함한 중요지형 쟁탈전이 연일 계속되어 공세적인 방어로 지켰으나, 8월 28일에는 더는 지킬 수가 없어 신녕 방면으로 철수하여 370고지에 배치되었다.
이문식 상병이 소속된 제2연대는 9월 1일에 적 1개 대대 규모가 공격하는 것을 맞아 치열한 전투 끝에 격퇴했다. 그러나 적들은 9월 2일 야간에 대규모 공세(일명 북한군의 9월 공세)를 시작했고, 9월 5일은 북한군의 격렬한 공격으로 영천까지 피탈되는 최대 위기의 순간이었으나 방어진지를 사수함으로써 극복했다. 이후 9월 8일에 적의 부분적인 공격을 받아 일부 지역이 돌파되었으나, 예비대를 투입하여 방어지역을 회복했다. 당시 적들은 대규모 공격에서 실패하고 간헐적인 공격을 하다가 9월 10일에 다시 대규모 공격을 했으나, 연대 장병들은 9월 12일까지 끈질긴 방어로 격퇴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분대장으로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식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4판-2면-17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0-ㅅ-03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