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수(李文洙)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31957
  • 전몰일자 : 19510507

공훈사항

이문수 하사는 1929년 11월 27일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던 1950년 8월 20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문수 하사는 팔공산 전투에 투입되었다. 9월 공세가 시작되자, 이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741고지-팔공산 북방 중앙선까지 담당하여 대구 북쪽의 방어 진지편성에 주력하였다. 대구 북쪽 16km에 위치한 가산(902m)은 중요한 감제고지로서 다부동-대구간 도로와 대구까지도 감제하는 전술적으로 중요한 고지로써 가산을 탈환하여야 하였다. 사단은 기병사단과 협조하여 북한군에게 큰 타격을 주며 9월 14일에는 가산성 가장자리까지 진출하였다.
이문수 하사와 장병들은 10월 23일 안주 일대에서 청천강을 도하 한 후 24일 오전 전차 1개 소대가 용산동 후방으로부터 돌입하면서 북한군 전차를 격파하자, 남·북에서 협공을 받은 북한군은 패주하기 시작하였고 운산으로 진출하기 위한 중간목표인 영변과 용산동을 확보하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이 하사와 연대는 11월 24일에는 적 병참선의 요충인 태천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중공군의 제3차 공세가 시작되면서 이 하사가 소속된 사단은 1951년 1월 4일 서울에서 37도선 평택까지 철수한 후 수원, 의왕 거쳐 한강 서울 재탈환작전에 참전하여 3월 15일 서울을 재탈환하였다. 그 후 이 하사는 연대병력과 38도선 부근을 향해 진격을 계속하였고, 제6중대의 도하를 시작으로 16일 한강을 도하 하여 시내로 진출함으로써 서울 전역을 장악하였다. 이후 이문수 하사와 연대병력은 정찰기지 확보는 물론 적 8사단을 격멸할 목적으로 5월 6일 국사봉(109고지) 일대로 진출하여 공격 준비를 완료한 후 7일 오전 6시에 미 제3사단의 엄호하에 공격을 개시하였다. 연대는 적정이 경미하여 원당리 부근으로 순조롭게 진출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문수 하사는 1951년 5월 7일 고양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의 기습을 받아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수 하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5542 육)을 추서하고 유해(11묘역-4판-27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3-ㅊ-06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