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수(이문수)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17656
  • 전몰일자 : 19510316

공훈사항

이문수 일병은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낙동강 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북진하자, 이 일병은 북진통일의 선봉이 되고자 일어섰다. 그는 1950년 10월 중순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통신중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청천강 선에서 북진하고 있었고 제3사단은 동해안을 따라 진격 중인 상황이었다. 사단은 길주-백암으로 북진하여 11월 25일 백암을 확보하고, 계속 진격을 하는 중에 30일, 중공군의 참전으로 철수명령이 하달되었다. 사단은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를 개시하여 구룡포, 묵호, 부산에 상륙했다.
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사단 장병들은 북한군 제2사단을 맞아 분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당하자, 1951년 1월 2일 평창으로 철수했다. 사단은 1월 14일부터 22일까지 영월 동남쪽 남대리 부근에서 침투한 북한군 제31사단을 포위 격멸했다.
2월 5일 미 제10군단이 라운드업 작전을 전개하여 반격을 했고, 이때 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2월 10일 횡성 동북방의 제5사단 작전지역을 인수했다. 2월 11일 중공군은 횡성-원주 축선에 전력을 집중하여 2월 공세를 감행했다. 사단은 중공군 제197사단과 북한군 제5군단의 전진을 지연시키며 횡성-원주 남동쪽- 제천 북방 성남리로 철수했고, 2월 18일 적의 공세는 중지되었다.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하여 2월 21일부터 킬러작전을 전개했고, 이때 사단은 재반격하면서 원주로 이동했다. 이후 사단은 공격작전을 지속하면서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 끝에 3월 28일까지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현리-하서림을 잇는 선을 확보했다. 산악지형에서 부대가 기동하는 상황에서 통신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 일병은 난관을 극복하며 사단의 지휘통신 유지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하지만 그는 3월 16일 예하 연대의 통신 점검을 하다 적의 습격을 받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0면-21866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3-ㅋ-03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