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문수(李文壽)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8620034
  • 전몰일자 : 19501026

공훈사항

이문수 일병은 강원도 춘천시 후병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선으로 후퇴를 거듭하던 1950년 7월 중순, 경북편성관구사령부 제7교육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직할부대인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이문수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8월 중순, 제6사단은 용기동∼교안동∼307고지를 잇는 낙동강방어선을 점령하여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있었다. 이후 신녕 북방의 화산–725고지를 잇는 고지군으로 철수하여 이곳에서 북한군의 8월 공세와 9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6일부터 전 전선에서 반격을 개시했다. 당시 제6사단은 정면의 조림산에서 북한군을 섬멸한 후 추격하기로 했다. 당시 북한군은 조림산 일대에서 강력히 저항하다가 9월 22일 야간에 퇴각했다. 이때부터 제6사단은 도망가는 북한군을 추격했다. 9월 23일부터 함창-충주-원주-춘천 방향으로 공격하여 10월 5일에는 춘천 북방의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이후 사단은 10월 8일에 화천을 점령했고, 이어서 김화-금성-신고산-덕원-마식령-양덕 방향으로 북진하여 10월 19일에 성천을 점령했다. 그리고 10월 21일부터 진격 방향을 바꾸어 순천-개천-희천 방향으로 공격했다. 이문수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으로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하여 보고하거나 적 지휘소 및 보급소를 타격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유엔군은 10월 24일부터 압록강을 향한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펼쳤다. 이때 제2연대는 10월 24일에 온정리를 거쳐 압록강 변의 벽동(온정리 서북방 75㎞) 방향으로 공격했다. 이때 동림산(1165m) 기슭에서 매복 중이던 중공군(제40군)으로부터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후방이 차단되는 등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치열한 전투를 수행했다. 이날 이문수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10월 26일에 적진에서 적 지휘소를 타격하여 지휘체계를 혼란하게 만들었으나, 중공군의 반격으로 큰 피해를 받았다. 이날 그는 적진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문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1-ㅁ-06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